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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바로잡습니다] 4.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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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회 분야 기사는 우리 주변의 밝은 곳을 비추고 소외받고 어두운 곳을 어루만지는 것이 많습니다. 또 부조리와 비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경종을 울립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쉽고 깊이 있게 전달하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해 개선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인간미 넘치고, 살맛 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중앙일보 사회면은 올해도 '오보'라는 복병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습니다.

◆ 발표 '중계'해 오보=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기사 내용이나 제목을 다소 부풀리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사에 맛을 더하는 일종의 '양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보는 다릅니다. 과장된 보도, 단정적인 보도, 일방적인 보도에서 비롯되는 오보는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취재원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줍니다.

지난 6월 전국을 휩쓴 '불량 만두 파동' 보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위생적으로 처리되지 않은 단무지 자투리를 이용해 만든 만두소가 일부 만두.호빵 제조업체에 공급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식품의약품안전청의 발표에만 의존해 쓰레기 단무지를 사용한 것으로 부정확하게 보도했습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18개 불량 만두 제조업체 실명을 낱낱이 적시했습니다. '정부기관의 공식 발표여서 신뢰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것은 혼내줘야 한다'는 논리가 방패막이였습니다.

그 부작용은 컸습니다. 국민의 식품에 대한 불신감은 증폭됐고 연매출 2130억원의 냉동만두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한 업체 사장은 "오명을 벗고 싶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9개 업체가 혐의가 없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부 업체가 사용한 불량 소도 단무지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를 사용한 것일 뿐 '쓰레기'는 아니었습니다.

현장 확인에 소홀했고 업체의 주장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여론몰이식 보도를 한 잘못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성 이타이이타이 공포'(6월 4일자 9면) 기사는 환경단체의 발표를 검증하지 않고 전달한 것이 오보로 이어졌습니다.

환경연합은 경남 고성군 병산리 주민 300여명 가운데 7명의 소변 검사를 근거로 이타이이타이병이라고 발표했고 이를 여과 없이 보도했습니다. 그 뒤 고성군의 농산물 판매가 줄고 횟집에 손님이 끊기는 등 주민들이 겪은 고통은 적지 않았습니다.

일부 주민은 "자녀 혼삿길이 막혔다"고 항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환경부 민.관 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이타이이타이병이 아닌 것으로 최근 결론내렸습니다. '카드뮴 중독증'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검토한 뒤 보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사건이었습니다.

◆ 정책 문제점 미리 못 짚어=지난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 버스는 혁명 중'(6회)과 '버스 개편 알고 타자'(3회) 시리즈를 싣고 7월 1일 시작된 서울시 대중교통 전면 개편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 정책 소개에 치우치고 정책의 허점과 미비점을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서울시는 해방 이후 처음 시도하는 '대수술'에서 버스 노선과 번호를 확 바꾸고 중앙버스전용차로제.환승무료시스템.신 교통카드.새 요금체계.버스종합관리시스템(BMS) 등 새 제도를 도입했으나 제대로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새 단말기는 곳곳에서 말썽을 일으켰고, 버스는 줄줄이 서서 앞차가 떠나기만 기다리는 '기차 버스'가 됐습니다.

본지는 단말기 교체 및 점검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잘될 것"이라는 서울시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사전에 부각시켜 서울시가 (이틀 정도 무료 운행을 하면서) 단말기를 점검하도록 했더라면 혼란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중앙버스전용차로제도 천호대로.하정로의 '모범 사례'만 전했습니다. 새로 중앙차로제가 시작된 도봉.미아, 수색.성산, 강남대로를 오가는 버스의 대수는 기존의 천호.하정로를 운행하는 버스와 단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교통량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미리 지적했더라면 시민의 불편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많은 시민의 협조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면서 차량 속도는 빨라지고 사고는 주는 등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불편한 점이 있으나 서울시의 교통 개혁을 배우기 위해 대구.대전 등 국내 대도시는 물론 영국.러시아.중국.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참관단이 속속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개통된 고속철도 관련 기사에서도 비슷한 오류를 범했습니다. 언론은 두 시간대에 부산과 목포까지 주파하는 고속철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나 8개월여가 지난 지금, 고속철 좌석의 상당수는 빈 좌석입니다. 호남선은 대전 이남에서, 경부선은 대구 이남 구간에서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서둘러 고속철도를 개통한 문제점을 언론은 당연히 지적해야 옳았습니다. 귀가 멍할 정도의 소음과 역방향 좌석 등 여기저기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시운전을 마치고 개통을 앞둔 시점에 이를 심각한 문제로 다룬 언론은 없었습니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역방향 좌석의 문제점은 개통 2년3개월여 전에 감사원으로부터 "고속철 2등실 좌석이 고정돼 있고 폭이 좁은 데다 회전이 되지 않아 승객 불만이 예상되며 승객 감소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까지 받았고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사안이었습니다.

국민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현안을 기사화하면서 철저한 진단을 거치지 않아 정부의 보도자료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새해에는 독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바라보는 노력을 배가하겠습니다.

사회.정책기획.수도권부

*** 성급한 보도 … 당사자 명예 해친 것 죄송

이상언 사회부장, 이하경 정책기획부장, 최천식 수도권부장

사회부는 '신문사의 5분 대기조'입니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경찰.119구조대에 뒤질세라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돌발 상황이 많고 취재 영역과 대상이 다양하다 보니 사회부 기자의 하루하루는 '오보와의 전쟁'입니다. 취재원에게 불리한 것은 취재하기 어렵고, 충실하게 취재하고서도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마감 시간에 쫓길 때 그런 일이 많습니다. 정책기획부와 수도권부는 정책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오보하는 수가 있습니다. 정책을 생산하는 정부 기관은 장밋빛 청사진을 경쟁적으로 내놓습니다. 알맹이 없이 번지르르한 포장을 앞세워 언론을 이용하려 할 때도 있습니다. 전문지식이 없으면 문제점을 간과하고 보도자료를 그대로 따라가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여기에다 언론사 간의 치열한 경쟁은 설익은 기사를 보도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보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네 탓'으로 돌리지 않겠습니다. 빠르고 정확한 기사 보도와 비판은 기자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보를 걱정해 안전한(?) 기사만 쓴다면 그것은 박제된 기사를 독자에게 공급하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오보를 줄여 개인.단체의 명예를 보호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24시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취재 안테나를 더욱 높이겠습니다.

사회를 감시하는 날카로운 눈과 인간적인 따뜻함, 다양한 정보가 어우러지는 사회면을 만들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 비정규직 법안 시행 확정된 것처럼 써

지난 9월 정부가 비정규직 법안을 발표했을 때 노사의 입장과 반응을 소홀히 다룬 감이 없지 않습니다.

올해 말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을 믿고 2006년에 정부 안이 시행되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는 물론 사용자도 정부 안에 강력히 반발했고,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정부 안은 상당 부분 수정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여당 의원 중에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많이 내놓은 실정입니다.

법안은 정부가 발표한다고 해서 그대로 시행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법안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법안을 보도하기 전에 이해집단의 입장을 헤아려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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