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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협추진위 회의 거부 금강산댐 거론 때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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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 국토환경보호성이 6일 남한에서 금강산댐 붕괴설을 거론한데 대해 "사실을 왜곡한 날조극"이라고 반발하고 나서 이 문제가 7일로 예정됐던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거부의 직접적 배경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북한에서 금강산댐은 댐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군이 건설한 이 댐을 '혁명적 군인정신'의 사상적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군인들이 영하 30도의 혹한에서 콘크리트를 굳히기 위해 불통을 설치하고 솜옷을 벗어 씌우며 공사를 계속했다"는 등의 사례를 들어가며 혁명적 군인정신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선군(先軍)정치의 시대정신이라며 이의 확산에 나서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1월 28일자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전인민적인 시대정신으로 확고히 전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내건 만큼 혁명적 군인정신은 곧 金위원장의 통치 이념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따라서 북한은 금강산댐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혁명적 군인정신은 물론 선군정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 관계자는 "댐의 공사를 맡은 군부는 자신들의 '역작'에 대해 남측에서 이의를 제기한데 대해 강력히 반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우리측이 경추위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고 한 만큼 북한 군부로선 자기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 회의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금강산댐 위성사진 출처가 미국이라는 점도 북한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0북한이 담화에서 "남이 준 위성촬영 자료라는 거짓을 내들고 붕괴니 위험이니 하고 떠드는 것은… 외부세력의 조종에 따라 북·남관계를 대결에로 돌려세우려는 범죄적 목적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1993~94년의 핵위기 때도 미국의 영변 핵시설 위성촬영에 대해 크게 반발한 바 있다.

그래서 북한이 경추위 거부의 이유로 내세운 최성홍(崔成泓)외교부장관의 발언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0崔장관 발언이 지난달 23일 첫 보도된 뒤에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만큼 경추위 거부는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을 다녀온 정부 관계자도 "북한 관리들도 경추위는 예정대로 열리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번 경추위 무산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의 감정적 반응이나 군부의 위상에 미뤄 남북 관계는 한동안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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