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게이트 휘말린 포스코 왜 외풍에 약한가 무늬만 민영화… 속은 아직 공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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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국내 8위 기업인 포스코(POSCO:옛 포항제철)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규선-김홍걸로 이어지는 정치커넥션에 휘말려 유상부 회장이 검찰조사를 받고 핵심임원이 경질되는 등 포스코 내부가 수라장이다. 민영화 3년째를 맞아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본격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진입하려는 성공적인 민영화 모델로 자리잡으려는 시점에서 이번 사태가 터진 것이다.

그러나 철강업계의 한 인사는 "포스코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왜 끊임없이 정치 외풍에 시달리고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포스코가 무늬만 민영화·글로벌화됐지 속으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수 있는 아주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구조 문제=지난해 초 민영화 이후 처음 열린 주총에서 유회장 교체설이 나돌았다. 당시 민주당 핵심인사가 추천하는 K전직장관이 후임으로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유회장은 이 무렵 민영화된 기업으로 외압을 배제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청탁을 많이 했던 여권 핵심인사들로부터 유회장이 미움을 샀던 것은 당연한 이치다. 유회장은 당시 이같은 정치권의 루머에 고민했다. 이러한 사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측근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가 된 뒤 유회장은 유임됐다.

포스코는 2000년 10월 공기업에서 민영화됐다. 현재 주주구성을 보면 해외지분이 62.01%다. 언뜻 보면 외국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경영권 확보보다 투자가 목적이다. 나머지 국내 지분도 자사주 12.79%를 제외하곤 다양하게 분산돼 있다. 이렇다 보니 시중은행·투자신탁 등 14.77%가 사실상 정부의 영향력 안에 있는 지분이다. 겉으로 아무리 독립경영을 표방해도 정부·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돼있다.

◇외풍 막았던 'TJ체제'의 한계='포철 신화'를 일군 박태준(TJ)고문은 외풍을 잘 막았다. 1970년 2월 포철이 설비를 구매할 때 정치권에서 리베이트 받아 비자금을 조성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사장이던 朴고문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 '모든 것을 朴사장에게 맡겨라'라는 내용의 대통령 친필사인이 든 메모지,이른바 '종이 마패'를 들고 외풍을 막아냈다.

이후 전두환 정권(5공)이 들어서자 다시 정치외압이 시작됐다. 이때 TJ는 "포철을 살리기 위해 정치를 한다"며 정치에 첫 발을 디뎠다. 잘 나가던 포철이 다시 정치에 휘말린 것은 김영삼(YS)정권 때다. TJ와 YS간의 정치갈등 때문이다. 소위 'TJ사단'으로 불리던 핵심인물들이 거의 쫓겨나갔다. 이후 김대중 정권이 들어오면서 TJ복권의 시대가 열리고, 다시 포스코의 대부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TJ와 함께 퇴출됐다가 복귀한 인사는 유상부 회장을 비롯해 이대공 포철교육재단 이사장·박득표 포스코건설 회장·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박문수 부사장 등이다. 굴곡은 있었지만 30여년 지탱해온 이 철옹성같은 조직이 격심한 정치변동기에 약점을 노출하면서 외풍을 손쉽게 끌어들이는 큰 틈새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보완 필요한 민영화 방식=한국경제연구원의 이수희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포스코가 거의 독점기업으로 이익을 많이 내고 있지만 보이는 대주주가 없다보니 정치권 등에서 자꾸 개입하려는 것"이라며 "현재 이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KT(옛 한국통신)는 포스코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확실한 주인을 찾아 주든지▶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유능한 경영진을 영입토록 하는 것▶기업연금 등 민간부문의 지분을 크게 늘리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제시된다.

김시래·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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