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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장애인 20여명 요천로 벽화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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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남원시 금동 천변로에 자신들이 그린 벽화를 들여다 보고 있는 장애인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관광 도시 얼굴 가꾸기'사업에 장애인들이 주역으로 나섰다.

남원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금동 요천로 변에는 최근 길이 220m, 높이 2.2m의 멋진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벽화는 흥부가 꽃이 활짝 핀 초가로 화초장(문짝 등을 화초로 장식한 옷장)을 메고 가는 장면과 춘향이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 등을 담고 있다.

이 벽화는 말하고 듣는 것이 불가능한 장애 2급 농아인 20여명의 솜씨다. 이들은 지난달 20일부터 눈짓.손짓을 섞어 가며 벽면을 다듬고 스케치.색칠.선 그리기 등을 하느라 한 달 동안 구슬땀을 흘렸다.

대부분 '공공 건물의 벽화 그리기' 사업을 일반 미술인들에게 맡기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남원시가 농아인들에게 사업을 맡긴 데에는 사연이 있다.

농아인들은 사회복지시설.특수학교 등에서 목공예나 자수.그림.애니메이션 등을 배워 취업을 하지만 의사 소통이 원할치 못해 이직률이 매우 높다.

남원지역에도 500여명의 농아인이 살고 있지만 농업.단순 생산직 종사자를 빼면 60~70%는 실업자 신세다.

이형노 농아인협회 남원지부장은 지난 10월 초 이같은 사정을 최진영 시장에게 설명하며 "시가 추진하는 '아름다운 남원의 벽화 그리기' 사업을 우리들에게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주변의 우려와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최 시장은 "장애인 재활사업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벽화사업을 맡겼다. 작업은 시작, 한 달만인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이 작업하는 동안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애인 10~20명이 매일 벽화작업 현장을 방문하곤 했다. 일부는 나이가 든 부모나 할머니를 모시고 와 보여 주는가 하면 자녀들을 데리고 와 자랑하기도 했다.

이들의 스케치 작업을 도왔던 비장애인 화가.디자이너 등은 "색칠이 꼼꼼하고 정확하다" "이렇게 빨리 완성할 줄 몰랐다"며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또 조경업자나 어린이집 운영자 등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남원시는 내년에 시작하는 운봉읍사무소 벽화그리기도 장애인들에게 맡길 것을 검토 중이다.

최진영 시장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솜씨를 가지고 있는 데도 단지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일자리를 못 갖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장애인들이 이번 벽화그리기를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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