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경 미스터리] 10. 소나무는 왜 숲에서 점점 사라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어릴 때 광릉(경기도 남양주시)에 갔을 땐 소나무가 울창했는데 요즘은 도로변에만 있는 것 같더라고요."

회사원 김기영(31.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씨는 "이곳에서 소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의 느낌은 정확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1960년대만 해도 광릉 숲(2240㏊, ha=1만㎡)의 50% 이상이 소나무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의 4분의 1도 안 되는 500㏊만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는 광릉에서만 사라지고 있는 걸까.

60~70년대 울창한 소나무로 뒤덮였던 남한산성. 지금은 행궁 뒤 영월정 주변과 수어장대 부근에만 소나무가 울창할 뿐이다. 나머지 지역은 활엽수가 대신 자리를 잡았다. 최근 서울시는 남산에서 소나무가 줄어들자 우량 소나무 씨앗을 채취해 양묘장에서 기른 뒤 남산에 다시 옮겨심는 방안을 지난달 초 발표했다. 예부터 지조와 절개.장생(長生)의 상징으로 사랑받던 소나무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소나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궁궐이나 절 등 목재문화재 대부분이 소나무로 만들어진 점을 상기시키며 "이대로 가다간 수십년 뒤 문화재 복원 사업도 못 할 판"이라고 걱정했다.

전 교수는 "50년 전 우리 산의 60%를 덮고 있던 소나무 숲이 25년 전에는 40%, 현재는 25% 정도로 급속히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추세라면 50년 뒤에는 남한에서, 100년 뒤에는 한반도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소나무가 사라진 지역을 신갈나무.떡갈나무 같은 활엽수가 채우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도시민이 아니라 농민의 감소가 원인이 됐다. 심영만 홍천 국유림관리소장은 "농민이 농촌을 떠나면서 소나무도 같이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석을 내놓는 것은 소나무의 성장 방식 때문이다.

소나무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맨땅에 떨어져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봄이면 가을.겨울에 떨어진 활엽수의 낙엽이 땅 위에 잔뜩 쌓여 있게 마련이다. 낙엽이 소나무가 발아할 수 있는 조건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낙엽을 농민들이 긁어내 땔감이나 퇴비로 사용했다. 맨땅을 농부가 드러내 주는 것이다. 소나무로선 농부가 2세를 키워내는 산부인과 의사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도시화와 함께 농부가 떠나면서 낙엽은 쌓여만 간다. 낙엽은 활엽수에는 토지를 비옥하게 해 자양분을 제공한다.

결국 소나무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활엽수만 번성하게 된다. 활엽수로 덮인 숲은 소나무의 성장에 필요한 햇빛마저 가린다. 그나마 남아있던 소나무도 쇠락해 솔방울을 주렁주렁 유난스럽게 많이 단다. 죽음을 앞두고 서둘러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적 생존 전략이다. 인간의 '간섭'이 사라진 숲은 이렇게 소나무의 대(代)가 끊기고 활엽수로 대체되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임종한 박사는 "소나무의 멸종을 막고 문화재 복원용 소나무 숲이라도 보존하기 위해서는 농부가 해오던 관행을 의도적으로라도 답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 진실 혹은 거짓=야산에서 꾸부정하게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 언뜻 "쓸모없는 나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소나무만큼 용도가 다양하고 목재로서 훌륭한 나무도 드물다. 잎은 소화불량 치료와 강장제로, 꽃은 이질 치료에, 송진은 고약 원료 등으로 쓴다. 화분은 송기떡 같은 음식에 들어간다. 또 재질이 단단해 건축재.펄프용재로 이용된다. 특히 곰솔.강송 등 국내 소나무의 휨 강도는 미송 같은 외국 소나무보다 높아 선박.관.궁궐 제작 등에 유용하게 쓰인다. 겨울에 산소를 공급하기도 한다. 다만 국내 소나무는 외국 소나무에 비해 성장이 늦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다른 나무에 비해 물이 부족하고 토질이 좋지 않아도 햇볕이 강한 지역이면 잘 자란다.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한다. 따라서 토양이 척박하고 사철이 뚜렷한 한반도에서 번식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