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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의 원조가 된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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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에이스는 원래 야구의 주전투수(主戰投手)를 의미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1914~18) 당시에는 적기를 10대 이상 격추한 공군 조종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귀족 가문 출신인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1892~1918)은 독일 공군 최고의 에이스로서 무려 80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붉은색 포커삼엽기를 몰고 하늘을 날던 그는 ‘붉은 남작(Red Baron)’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공중전 능력을 상실해서 추락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적기를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에게 피격당하고도 목숨을 건진 연합국 조종사들이 적지 않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관이었던 그는 종종 자신의 덴마크 하운드 종 애견 모리츠를 마스코트 삼아 비행에 동행시키곤 했다.

1912년 기병대로 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정찰기를 타본 뒤 공중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1915년에 공군으로 전속했고, 1916년 9월에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917년 6월 24일 리히트호펜을 지휘관으로 삼아 새로 결성된 비행중대는 공중전에서 쉽게 식별하기 위해 비행기를 밝은 색깔로 칠했으므로, 연합국 공군에게서 ‘리히트호펜의 곡예비행단(Flying Circus)’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8년 4월 21일 리히트호펜은 포커삼엽기를 몰고 솜 강 부근 상공으로 출격했다. 영국 공군의 풋내기 조종사였던 윌프레드 메이 중위가 리히트호펜과 공중전을 벌이던 중 메이의 전투기 기관포가 고장 났다. 리히트호펜은 메이를 추격해 거의 지면 가까이까지 몰아붙였다. 캐나다 공군 조종사 로이 브라운 대위가 그 뒤를 바짝 뒤쫓아 메이 중위를 공격하며 급강하하던 ‘붉은 남작’을 향해 포격을 가하자 빨간 삼엽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저공비행하던 전투기를 보고 지상에서 사격을 가한 오스트레일리아 기관총 부대 역시 리히트호펜의 죽음에 일조했다. 영국 공군은 적이지만 최고의 예우를 다해 그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초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김정렬 장군의 동생이자 ‘빨간 마후라’의 원조 김영환(1921~1954) 장군은 리히트호펜을 흠모했다. ‘빨간 마후라’를 처음 두른 건 6·25전쟁 당시 제10전투비행전대 전대장을 맡던 시절이었다. 형수(김정렬 장군의 부인)가 입은 붉은 치마를 보고 문득 리히트호펜의 붉은 빛깔을 떠올리고 “빨간 치마 색깔이 좋으니 머플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만들어준 머플러를 매고 다녔다. 김영환 장군은 6·25 때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삭막한 전쟁터에 피어난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