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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제2부 薔薇戰爭 제3장 虎相搏 :막무가내로 김대렴을 끌어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김명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주사위의 십사면중 그 어디에도 '술 석잔 마시고 적의 목을 베어라(三盞斬首)'란 문구는 새겨져 있지 않음을 주연에 참석하고 있던 모든 귀족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김대렴은 김명의 적이 아니었다.

김대렴은 흥덕왕 3년(823)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차의 종자를 가지고 와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던 외교관 출신의 노대신이었던 것이다.

그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흥덕왕 3년 12월.

당에서 돌아오는 사신 김대렴이 차의 종자를 가지고 돌아오매 왕은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성덕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매우 성하였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경상남도 하동군 쌍계사에서 재배된 차는 이때 김대렴이 심은 차의 종자로 김대렴은 '차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원로귀족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김명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명이 목을 벨 반적으로 김대렴을 지목한 것은 그가 죽은 상대등 김균정의 오랜 벗이었기 때문이며, 도망친 김우징과 김예징 등 천적에 대한 분노를 풀고 이들을 방치한 희강왕의 무능에 대해 경고를 내리기 위해서이기도했다. 이를테면 속죄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허니, 대감은 목을 주시오. 주사위에 나와있는 주문대로 대감의 목을 베어야겠소."

김명이 눈을 부릅뜨고 호령을 하자 흥겨웠던 주연은 단번에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뭣들 하고 있느냐.어서 대감을 끌어내지 못하겠느냐.""

김명이 명령을 하자 숙위하고 있던 배훤백이 다가가 김대렴을 포박하였다. 김대렴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나 그 어떤 군신들도 이를 만류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좌에 앉아있던 희강왕도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왜들 이러십니까."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김흔이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강주(康州·지금의 진주)의 대도독이었다가 아찬에 올라 상국(相國)을 겸하고 있었던 귀족이었다. 김흔은 김양의 사촌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은 김흔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던 인격자였다. 김명이 김흔을 흠모하고 있었던 것은 김명의 아버지 김충공이 생전에 그를 '정신이 밝고 빼어났으며, 그릇이 깊고 크다(精神明秀器宇深沈)'고 칭찬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김충공의 천거에 의해 당나라의 조공사로 들어가 뛰어난 활약을 벌였기 때문인 것이었다.

"오늘은 대왕마마 어전에서 즉위를 경하하는 연회를 베푸는 흥겨운 잔칫날이요. 어찌하여 이 좋은 날 끔찍한 참화를 일으키려 하시나이까."

김흔이 나서서 가로막자 김명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상국은 나서지 마십시오. 자고로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오. 옛말에 이르기를 의관지도(衣冠之盜)라 하였소. 조복을 훔쳐 입은 도둑이란 말로 대감은 실로 관복을 훔쳐 입은 도둑인 것이오."

김흔이 재차 말렸으나 김명은 막무가내였다. 배훤백이 김대렴을 포박하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주연에 참석하였던 귀족들의 흥이 파하여 이미 파장이 되었으나 김명이 다시 주사위를 집어들고 이홍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자, 다음 차례는 대감이오. 그러니 어서 주사위를 던지시오."

이홍은 서슴지 않고 주사위를 집어들었다. 그는 보란 듯 마루 위에 주사위를 굴렸다. 주사위가 멎자 상면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나타났다.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술 마시기(自唱自飮)"

그러자 이홍은 스스로 술잔에 술을 따라 한꺼번에 들이킨 후 이렇게 말하였다.

"주사위에 나온대로 술을 한잔 크게 마셨으니 이제는 크게 노래를 부르겠소이다."

그리고 나서 이홍은 연못가로 내려가 화려하게 피어난 꽃 한송이를 꺾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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