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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비평가주간 초청작 '죽어도 좋아' 박 진 표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평론가들은 '금기에 도전한 영화''영화를 뒤집은 영화''올해의 발견'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차분하기만 하다. "70대 노인의 일상과 성을 그대로 노출시킨 까닭인 것 같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들 하더군요."

'죽어도 좋아'는 박진표식 '생활의 발견'이다. '생활의 발견'의 홍상수 감독이 삶의 더께 속에 은폐된 허위의식을 비꼰다면 박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영화의 중심은 노인의 성(性)이다. 홀로 노년을 지내던 박치규(73) 할아버지와 이순예(71) 할머니가 '신방'을 차리고 행복을 만끽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배우가 실제 인물인 데다 표현 방식도 직접적이다. 축 처진 뱃살, 늘어진 젖가슴, 검버섯이 가득한 이들이 막바지 환희를 나누는 장면에선 일종의 경의와 동정마저 느껴진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포르노그래피로 오해받을 수도 있거든요. 다행히 그런 반응은 없더군요. 사람들은 금기 파괴, 혹은 충격이란 표현을 써요. 하지만 그건 노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두터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죽어도 좋아'의 미덕은 객관적 시선이다. 감독의 목소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호사가들은 노년의 성을 두고 왈가왈부하겠으나 영화의 기둥은 어디까지나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질투하는 보통 사람의 일상일 뿐이다.

할머니가 늦게 돌아오자 토라지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질책에 "내겐 권리도 없느냐"며 훌쩍이는 할머니, 할머니가 몸살이 나자 손수 닭을 잡아 백숙을 대령하는 할아버지 등 청춘 남녀의 사랑과 다름이 없다. '집으로…'에 나오는 외할머니의 가없는 손자 사랑이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왔다면 '죽어도 좋아'의 부부간 사랑은 자연적 발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에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 두 분의 사랑의 힘 덕택입니다. 영화에 가까이 가고 싶어 11년간의 방송사 PD생활을 접었는데 예상보다 열배 이상 나아간 것 같아요. 뭔가를 그럴듯하게 꾸며야겠다는 욕심을 버린 게 오히려 득이 됐습니다."

박감독은 "새로운 영화의 출현"이라는 평가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만큼 노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거죠. 누구든지 만들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섹스에도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러브 스토리로 보았으면 합니다."

그는 지난해 가족 특집 TV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것, 몸이 늙는다고 마음마저 늙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박감독은 올 칸영화제에 동생과 함께 참가한다.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동생 진오(32)씨의 단편 '리퀘스트'가 영화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것. 그는 속 깊고 생각 많은 동생의 작품에 프로듀서를 한번 맡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 "한국의 코언, 혹은 주커 형제가 나오겠다"고 하자 "이번 작품이 잘 돼야 그럴 날도 오겠죠"라고 답했다. '죽어도 좋아'는 8월 말께 개봉될 예정이다.

글=박정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영국 시인 바이런처럼 영화감독 박진표(36)씨는 어느날 깨어 보니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 25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의 데뷔작 '죽어도 좋아'(사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 칸영화제측에서도 손짓을 했다. 국제비평가연맹이 주간하는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것. '해피 엔드'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 부문에 참여한 적이 있다. 무작정 6㎜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시작한 영화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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