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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츠만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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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충돌방지장치, 에어백, 잠김방지제동장치(ABS)…. 이런 안전기술들은 과연 자동차 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엔지니어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시각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전장치 개발로 오히려 자동차 사고 및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났다고 한다. 차의 안전성이 높아지면 이를 믿고 운전자가 더 난폭하게 운전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펠츠만 효과'라 부른다. 처음 주장한 샘 펠츠만 시카고대학 교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펠츠만은 1975년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법률이 자동차 사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조사했다. 일단 사고당 사망률은 안전장치 덕분에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체 사고 수가 늘어나는 바람에 사망률의 하락 효과는 상쇄되고 말았다. 그 결과 안전장치의 의무화가 되레 자동차 사고 및 사망자 수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고 위험이 낮아짐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고 속도를 더 내려는 운전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펠츠만은 이를 비용(사고 위험)의 감소에 따라 편익(고속 주행)을 늘리려는 운전자들의 자연스러운 경제행위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펠츠만 효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핸들에 에어백 대신 수류탄을 달고 다니게 한다고 치자. 사고가 나면 뼈도 못 추린다는 걸 알면 모든 운전자는 서로 조심운전을 할 것이다. 사고가 났다 하면 사망률은 100%이겠지만 전체 사고 수가 줄어 총 사망자 수는 감소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수류탄을 단 차는 아무도 타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현상이 눈에 띈다. 독재정권 시절엔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다간 크게 다쳤다. 말에 대한 안전장치, 즉 언론의 자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자 이젠 하지 말아야 할 말도 마구 하게 됐다. 특히 함부로 지껄이는 막말 한마디에 정국이 경색되는가 하면 모두들 편을 갈라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를 막을 수가 없다. 이를 억지로 틀어막으려는 것은 차에 에어백 대신 수류탄을 달자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임과 방임의 균형은 그렇게도 어려운가 보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