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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문화 키워드] 미술 - 비엔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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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부산 찍고, 광주 찍고, 서울 찍고…. 노래 가사가 아니다. 올 한국 미술계가 옮겨 다닌 비엔날레(Biennale)의 도시들 얘기다. 비엔날레는 2년마다 국제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작품들을 전시하는 국제 미술 전시회를 가리키는 말. 1995년 광주에서 처음 창설된 한국의 비엔날레가 10년을 맞는 올해, 세 개의 비엔날레가 하반기에 몰리는 비엔날레 풍년을 맞았다.

▶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 5회째를 맞아 '참여 관객제'란 새 형식을 실험했으나 평가는 엇갈렸다.[중앙포토]

'2004 부산 비엔날레'는 38개 나라 137명 작가를 초대해 '틈-건너가기'를 주제로 114만명 관객을 불러모았다.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을 내건 '제5회 광주 비엔날레'는 42개 나라 200여명 작가가 참여해 50여만명 손님이 들었다. '제3회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는 '게임/놀이'를 주제로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수치로만 어림하면 미술계가 엄청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큼직한 문화장터를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물량이나 덩치는 키웠지만 내용과 결과가 빈약하다는 평가다. 비엔날레 홍수가 장기 침체로 메마른 우리 미술계에 시원한 물줄기가 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비엔날레 따로, 미술계 따로 노는 상황을 이준희 '월간미술' 기자는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라고 표현했다.

'광주 비엔날레'는 창설 선언문에서 광주라는 도시가 지닌 역사적.지리적 의미를 강조했다.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건강한 민족정신을 존중하며 지구촌시대 세계화의 일원으로 문화생산의 중심 축을 자임한다'는 구절은 당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 창설 의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빛이 바랜 것도 사실이다. 올해의 경우 작가와 관람객이 짝을 이뤄 작품 구상에서 제작까지 함께하는 '참여 관객제'를 선보여 새롭다는 인상은 주었지만 전략과 뒷심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최근 세계 문화계는 난립이란 부정적 단어가 쓰일 만큼 비엔날레 창설이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다. 한국.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동구권과 러시아까지 가세해 비엔날레 만들기에 힘을 쏟는 추세다. 비엔날레가 옛 도시든 새 도시든 생산성과 경쟁력을 이른 시간 안에 되살리는 확실한 투자와 홍보가 되기 때문이다.

손쉽고 값싸며 효과 빠른 문화 전략인 비엔날레를 이미 3개나 만든 한국은 어찌 보면 이제야 비엔날레 조직에 뛰어든 중국, 뒤늦게 비엔날레의 개.보수에 나선 일본에 비해 앞서가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다른 도시, 다른 비엔날레와 어떻게 차별화하느냐' '비엔날레를 한국 미술과 함께 호흡하면서 끌고 갈 방향은 무엇인가' 하는 미래의 전술 연구다. 송미숙 성신여대 교수는 "비엔날레의 핵심은 총감독의 선정에 있다"고 말한다. 전시행사를 총지휘하고 감독하는 안목 있는 전문 예술감독을 찾고 기르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비엔날레가 일시에 많이 생기다 보니 웬만한 전시 전문가는 다 팔려나가고 이 분야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국제미술계의 상황이다. 외국의 이름난 전시 기획자를 찾아 그의 명성에 기대던 시대는 갔다. 우리 미술계 안에서 우리 미술을 잘 알고 아시아의 시각을 지닌 젊은 인재를 키우고 능력을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한국 비엔날레가 제 빛을 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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