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骨肉相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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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 한(漢)나라에 진중궁(陳仲弓·104~187)이라는 청백리(淸白吏)가 있었다. 그가 태구(太丘)현 현감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재물을 노린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진중궁은 즉각 행장을 차려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는 도중 또 다른 사고가 보고됐다. 한 부부가 어린아이를 낳아놓고는 버렸다는 것이었다. 보고를 접한 그는 수레를 아기 유기 사건 현장으로 돌리게 했다. 부하가 “살인사건은 무엇보다도 중한 일입니다. 마땅히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건의했다. 그 말에 진중궁은 “재물을 노린 살인 사건이 아무리 중하기로서니 친족을 해친 일만 하겠는가(盜殺財主, 何如骨肉相殘)”라고 답했다.

남송(南宋)시대의 문집인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해치고 죽인다’는 뜻의 ‘골육상잔(骨肉相殘)’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골육은 말 그대로 뼈(骨)와 살(肉), 즉 몸이다.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다 하여 아들과 자식과의 관계로 확대됐고, 피를 나눈 혈족 전체로 넓어졌다. 혈족끼리 서로 잔인하게 해치니(相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뜻으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있고, 친족이 흩어지는 아픔이라는 뜻의 골육이산(骨肉離散)도 널리 쓰인다.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이 쓴 ‘칠보시(七步詩)’는 그 아픔을 읊은 시로 유명하다. 조조에 이어 왕에 오른 조비(曹丕)는 재능이 뛰어났던 동생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 한 수를 지어라. 그러지 못하면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명했다. 일곱 발을 떼기 전에 시를 지어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조식의 문재(文才)가 발한다.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를 태우니(煮豆燃豆<8401>), 가마솥 콩이 뜨거워 우는구나(豆在釜中泣). 본시 같은 뿌리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뜨겁게 삶음이 어찌 이리 급한고(相煎何太急).” 자신을 가마솥 콩에, 형인 조비를 아궁이의 콩깍지에 비유해 골육상잔의 비통함을 표현한 것이다.

내일이면 6·25전쟁 발발 60주년이다. 벼와 살이 흩어지는 골육상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아픔과 상처는 언제나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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