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 면하고 이제 겨우 숨 돌릴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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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법정관리 중인 대한통운의 올해 경상이익 목표는 1백53억원으로 잡혀 있다. 법정관리의 주체인 법원이 잡은 수치다. 그러나 이 회사는 1분기(1~3월)에 1백57억원의 이익을 냈다.연간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2백30억원의 빚도 상반기 중 미리 갚는다. 지갑도 두둑해 여유자금(사내유보금)만 6백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엔 서울 순화동 사옥을 2백억원에 사들여 창사 이래 처음으로 셋방살이를 벗어났다.

법원은 대한통운의 1분기 실적과 관련,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61개 기업 중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만하면 최고경영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법도 하지만 이 회사 곽영욱(61·사진)사장은 "이제 겨우 숨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룹의 주력인 동아건설이 부도가 나면서 1999년 5월 사장으로 취임한 郭사장은 2000년 11월 대한통운에 대한 법정관리가 시작됐을 때 이례적으로 사장에 재취임했다.'38년 대한통운 외길 인생'을 걸어 온 郭사장이 대한통운을 회생시키는 데 적임이라고 법원이 판단했던 것이다.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동아건설에 대한 지급보증(7천억원)과 그로 인한 부도·법정관리를 겪으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허물어진 영업망을 복구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郭사장은 "17년 동안 지방지점에서 근무한 경험에 비춰 볼 때 회사를 살릴 길은 영업조직의 강화뿐이라고 판단했다"고 돌이켰다.

본사에서 40개 지방지점의 지점장을 내려보내던 관행을 깨고 지역에 연고를 둔 직원 중에서 지점장을 선발했다. 해당 지역 영업은 그 지역 출신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능력에 따른 파격적 인사를 통해 임원급이 가던 자리에 부장급을 앉히는가 하면 두 계급 승격 발령도 서슴지 않았다.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가자 실적은 자동으로 호전됐다. 1998년 8백94억원의 적자를 낸 대한통운은 郭사장이 취임한 99년 1백39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郭사장은 "올해엔 매출이 1조원을 넘고 경상이익도 3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라며 "법정관리 와중에도 매출과 이익이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은 물류에 관한 한 한국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직원들이 받쳐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이 소액주주 임시주총을 통해 회장으로 추대된 것과 관련,郭사장은 "대한통운이 동아건설 때문에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모두 지난 일"이라며 "경영자 입장에서 회장으로 복귀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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