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CEO ③] 대 이어 버섯 농장 경영하는 김대근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대근씨

"아버지의 대를 이어 세계 최고 품질의 버섯을 생산하는 농장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서 자동차로 20여분 떨어진 현내면에서 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김대근(23)군의 당찬 소망이다.

김군은 1983년부터 버섯 농장을 경영해온 김동수(53)씨의 둘째 아들로 대를 이어 영농 최고경영자(CEO)의 꿈을 키우고 있다.아버지 김씨는 98년 팽이버섯 농장을 500여평으로 두 배 늘리면서 버섯 전문인 금강산버섯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법인설립 1년만인 99년 3월에는 팽이버섯으로는 국내 최초로 '친환경농산물 무농약재배'인증을 받기도 했다.

김군은 강원도 명문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반 당시 서울의 웬만한 대학 이공계 진학이 가능했지만 '아버지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농업의 길을 택했다.

그가 3년제 전문대학인 한국농업전문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친구들, 심지어 담임 선생님도 반대했다.큰형이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자신이 버섯 농장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때까지 손에 흙 한번 묻혀 보지 않은 평범한 도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할아버지가 선생님을 설득해 원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에겐 "5년 후에 보자, 내가 결코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2000년 2월 이 학교 특용작물과에 입학했다.

"우리나라도 대를 잇는 전문 농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아버지님도 그런 뜻에 OK를 하셨구요.50년을 넘어 100년 전통의 버섯 전문농장으로 키워 보겠습니다."

아버지 김씨는 "어릴 때부터 미생물에 관심이 많고 집중력이 뛰어나 가업을 잇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젊은 세대가 농업을 탐탁치 않게 여겨 말 한번 꺼내지 못했다"며 "진학을 앞둔 대근이가 먼저 말을 꺼내 적극 지원하게 됐다"고 말한다.

농업학교 2학년때 일본에서 6개월간 현장실습을 했다.버섯은 균을 다루기 때문에 늘 청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꼼꼼하고 품질 처리에 앞서있는 일본 농가에서의 경험이 큰 힘이 됐다.

2003년 초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버섯 재배에 들어갔다.김군이 없어도 잘 돌아가던 버섯 공장이기에 더욱 긴장했다.

우선 디지털 세대 답게 컴퓨터에 밝은 점을 활용해 지난해 10월 홈페이지(www.goldmush.com)를 구축, 전자상거래를 터를 만들었다.

다음엔 농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아 나섰다.

살균을 하고 난 수증기를 회수,물탱크에 연결해 재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내 연료비를 절감했다.또 느타리버섯 포장 방식을 바꿔 비용을 줄였다.기존 2kg 상자에 300g짜리 소포장 봉지를 7개씩 2.1kg으로 포장했던 것을 일부는 500g짜리 4봉지씩을 2kg 상자 포장으로 바꿨다.이 덕분에 포장 봉지뿐 아니라 포장작업이 그만큼 줄어 인건비 절감 효과도 봤다.이런 공로(?)로 이제는 아버지로부터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막상 농장에 뛰어 들었을때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무척 힘들었습니다.'영농CEO'라는 게 컴퓨터로 재무정보를 관리하고 기계를 손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소위 '몸쓰는 일'은 안하는 것으로 알았거든요.농사라는게 몸을 사릴 수가 없더군요.일군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배양을 하고 수확을 하면서 버섯 재배의 노하우와 문제점을 하나 둘 파악할수 있었지요."

지난해 김군과 김군 부모 3명이 벌어들인 총 매출은 7억원.이중 25%인 1억 7000만원 정도 순수입으로 남았다.

올해는 주력 제품인 팽이 버섯의 경우 대기업이 잇따라 참여하면서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 100g당 가격이 100원까지 떨어졌다.원가는 160원에 달해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지만 거래처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생산을 하고 있다.대신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단가가 안정적인 군납을 늘렸다.

또 팽이버섯 보다 단가가 높은 느타리 버섯 재배를 확대했다.기존 60평의 느타리버섯 재배 창고를 2배로 증축했다.

현재 농장은 200평의 배지 배양시설, 실험실 8평, 팽이버섯 생육실 260평, 느타리버섯 생육실 120평, 포장 및 가공시설 35평, 입병실 및 재료창고 200평 등으로 제법 규모를 갖추었다.매일 7500병의 버섯 종자를 입고하고 같은 양만큼 출하한다.

김군은 올 상반기 웰빙 추세에 맞춘 가족용 버섯 상품도 내놨다.소비자가 가정에서 버섯을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도록 병에 배양된 버섯 초자를 판매하는 것이다.상세한 버섯 재배 설명서와 함께 병 8개를 묶은 한 상자에 1만9000원씩 팔고 있다.

"아직까지 전자상거래는 전체 매출의 1% 수준이지만 확대 가능성이 높습니다.인터넷은 앞으로 유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겁니다."

일이 끝난뒤 한 밤의 농촌 생활은 고독하기만 하다.친구들은 모두 진학해 도회지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이런 답답함을 풀기 위해 한달에 한번은 여행을 즐긴다.또 겨울에는 주말을 이용해 스노우 보드를 탄다.

그는 앞으로 한우를 기르고 채소를 생산하는 농업학교 동문들과 제휴,음식점 경영전문가를 고용해 '버섯 샤브샤브 전문점' 운영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씩 경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면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유통망도 넓어질 뿐 아니라 소비자는 '밭에서부터 식탁까지'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채널이 만들어질 겁니다."

김군의 당찬 포부다.

고성=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