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온 고향 바다 마음속 영원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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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젊은 아낙이 잠 못이루고 생각에 잠겨 있다. 눈을 감은 채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적삼 아래로 농익은 가슴이 반쯤 드러났다. 머리 위 시렁에는 물고기 두마리가 걸려 있고 하늘에는 조각달과 구름이 흘러간다. 제목은'포구의 여인'(사진).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 생각이 유난히 간절한 밤인 모양이다.

원로 화가 김한(71)씨는 마음 속 풍경, 두고온 고향을 서정적인 이야기 구조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으로 한국전쟁 중 남한으로 내려온 그는 평생 이 주제를 다양한 형상으로 변주해 왔다.

17~30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와 명동화랑(02-771-0034)에서 열리는'김한 작품전'은 그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이다. 이번에 화력 50년을 결산하는 대형 화집을 발간하는 기념으로 열게 됐다.

그는 1981년 벨기에 국제미술전 스페인 동상, 95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으나 화단 활동에 소극적이어서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10번째 개인전은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작품들을 접해 볼 좋은 기회다.

그림의 소재는 늘 같다. 어릴 적 고향의 기억, 그 단편적인 이미지들이다. 이들을 이리저리 조합한 그림이기 때문에 화면은 언제나 구성적이다. 중심에는 고향의 가족과 친척·이웃들이 선다. 그 주변에 하늘과 바다와 배, 해와 달과 별, 새와 꽃과 나비, 물고기와 소라, 집과 나무와 깃발 따위가 자유롭게 배치된다.

이런 소재들이 자리잡고 있는 공간은 어딘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캔버스를 온통 푸른 색으로 칠한 다음에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기 시작하는 작업방식과도 관계가 깊다. 푸른 색은 두고온 고향의 바다와 하늘의 색으로 읽히지만 본래부터 가장 초월적인 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경계나 장벽을 뛰어넘은 피안의 세계를 그리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세부를 생략하고 변형하면서 간결한 형태미를 나타내는 그의 작품에는 문학청년이던 젊은 시절을 반영하듯 이야기가 들어 있다. 무언가 자꾸만 말을 건네는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관객은 한편의 서정시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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