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lose-up] 가이트너 미 재무 - 왕치산 중 부총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1990년대 굵직한 아시아 경제 문제를 다루는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티머시 가이트너(49) 미 재무장관이다. 중국이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해 고민할 때 소방수 역할을 해 온 관료가 있다. 왕치산(王岐山·62) 중국 부총리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이다. 2년간 달러당 6.82달러로 묶여 있던 위안화 가치가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은 튼 것 말이다. 중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맞서지 않고 피하는 쪽을 택했다. 미국은 빠져나갈 틈을 주는 대신 중국의 몽니를 차단했다.

둘 다 흡족하진 않다. 그러나 환율 갈등이 환율 전쟁으로 치닫는 것은 막았다. 미·중 경제정책의 양대 파트너인 두 사람이 위안화 문제의 배후에서 전면에 나선 것은 지난 4월 8일이었다. 가이트너가 인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이었다. 베이징 시내가 아닌 공항 귀빈실에서 둘은 만났다. 75분간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반드시 봐야 할 일이 있었다는 얘기다. 만남 직후 뉴욕 타임스(NYT)는 “위안화 절상 발표가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실행이 지연됐고, 최근 갈등이 다시 고조되자 중국은 바로 진정제를 놓았다.

위안화 문제에 대해 가이트너는 강온 양면작전으로 중국을 을렀다. 지난해 1월 그는 “중국이 환율조작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위기도, 실업도 모두 중국 탓”이라는 의회와는 거리를 뒀다.

벼랑 끝자락에서 차를 돌린 것도 그다. 그는 4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미뤘다. 하지만 중국이 시간을 끌자 10일 그는 비판 강도를 확 높였고, 위안화 문제는 단번에 관심사로 재부상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지난해 한·미 통화 스와프에 그가 관여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시아 전문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중국·인도·태국을 돌며 자랐다. 대학 때 한 학기는 중국에서 보냈다.

왕 부총리는 중국의 금융통화정책 책임자지만 잘 나서지 않는다. 시장은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이나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의 입을 주목했다. 위안화와 관련된 그의 언급은 횟수는 적지만 강도는 셌다. 중국 관영 환구(環球)시보는 2월 그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미국 국채를 팔고, 미국 수출품에 대해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강약 조절에서 그는 가이트너 이상이다. 98년 광둥국제투자신탁(GITIC)의 파산으로 거액을 떼이게 된 외국계 금융사들이 대출 중단을 검토할 때 해결사로 나선 것도 그였다.

골드먼삭스 재직 시절 그를 알고 지낸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그는 시장을 이해하고,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안다”고 말했다. 그는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다. 그래서 고위 관료의 2세 그룹인 태자당(太子黨)으로 분류된다. 태자당은 국제 흐름에 밝고, 개방적인 경제정책을 선호한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