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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수출 회복세 보이자 결단 : 경제정책기조 선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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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거시경제정책 기조를 부양에서 중립으로 전환하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재정을 서둘러 집행하는 바람에 시중에 돈이 넘치면서 아파트값이 뛰고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

정부는 그간 내수진작책을 유지한 채 세무조사·가계대출 억제 등 미시적인 대응만 해왔으나 재정과 금리를 풀어둔 채로는 과열 우려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정부 내에서 속도조절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달 13일. 장승우 기획예산처장관이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지 않고,상반기 중 연간계획의 50%를 균형되게 집행할 방침"이라는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내 진념(陳稔)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이 "수출·투자가 회복될 때까지 정책기조를 바꿀 수 없다"며 부인,속도 조절론은 수면아래로 들어갔다.

하지만 3월에만 가계대출이 7조원 이상 늘어나는 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자 박승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이제 성장보다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금리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을 꺼내면서 속도조절론에 무게가 빠르게 실려갔다. 상황이 이쯤 되자 재경부도 속도 조절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이미 내부적으로 한은·기획예산처 등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회복속도를 조금씩 조절해왔다"며 "일부에서 과열이 나타나고,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시장에 본격적으로 신호를 보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수출은 4월에 증가세로 돌아설 전망이고, 투자도 미세하나마 회복세에 들어섰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좋아지는 것도 정부에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부양에서 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두가지 정책수단은 금리와 재정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콜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5월께 콜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확률이 80%, 0.5%포인트 올릴 확률이 20%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리가 올라가면 개인과 기업의 이자부담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지만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고 가계대출 급증세도 주춤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정을 조기집행(상·하반기 53대47)에서 균형 집행(50대50)으로 바꾸면 상반기에 대략 5조원 가량이 덜 풀리게 된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하반기 정책 시나리오도 갖고 있다.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물가가 불안해질 경우 콜금리를 추가로 올리고 내년 예산을 긴축으로 편성하는 등 돈줄을 더 조인다는 것이다.

고현곤·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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