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도쿄 北관문 사이타마 : 日최대 축구장 세워'脫도쿄'기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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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기 자는 지난 6개월간 사이타마 현의 주민이었다. 지난해 9월 월드컵 준비를 겸해 연수를 온 이후 줄곧 사이타마현 가와구치(川口)시에 살았다. 월드컵경기장까지는 차로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덕분에 지난해 10월 개장 기념 경기를 포함해 세 차례나 경기장을 찾았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이타마현의 희망과 고민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사이타마는 에도(江戶)시대부터 도쿄(東京)의 북쪽 방어 거점이었다.위치나 성격상 서울 위쪽의 의정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사이노쿠니(彩の國·색의 나라)'라는 애칭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한다. 그러나 도쿄에 종속돼 발전이 더뎠다.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홀로서기'에 나섰고, 결승전 유치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요코하마에 밀리는 바람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도쿄 도심에서 연결되는 사이타마 고속전철 우라와미소노(浦和美園)역에 내리면 스타디움이 눈앞에 나타난다. 6만3천7백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축구전용구장이다. 9백77석 차이로 서울 상암구장(6만4천6백77석)에 '아시아 최대' 자리를 뺏겼다.

원래 늪지대였던 이곳에 서식하던 백로가 지상에 내려앉는 모양을 따서 두개의 삼각형 지붕을 만들었다. 경기가 없는 날은 태양열로 조명 등 전력을 가동하고, 지붕에 고인 빗물을 모아 잔디와 화장실 용으로 사용한다. 지하에는 지진 등 재해에 대비해 3천명이 일주일간 살 수 있는 비상식량과 담요가 준비돼 있다.

이 경기장에서는 6월 4일 일본의 첫 경기인 벨기에전을 포함한 예선 세 경기, 그리고 6월 26일 준결승이 벌어진다. 특히 예선 경기를 갖는 나라 중 카메룬을 뺀 다섯 나라가 왕실이 있어 '귀빈 맞이'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다. 메인 스탠드 쪽에는 역대 월드컵 준결승이 열린 도시 이름을 딴 30개의 스카이 박스가 있다.

'월드컵 사이타마'의 또 하나의 축은 신도심에 자리한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다. 2000년 9월 완공한 슈퍼 아레나는 네 단계로 변신이 가능한 초대형 복합 스포츠·문화 공간이다. 객석과 천장, 바닥이 마술처럼 움직이며 6천석의 콘서트홀이 1만여명이 들어가는 실내체육관이 되고, 물을 얼리면 아이스링크로도 변한다. 공간을 최대한 확장하고 돌돌 말린 인조잔디를 펼치면 3만7천명 수용의 실내축구장이 된다.

이 슈퍼 아레나를 중심으로 갖가지 월드컵 이벤트가 벌어지게 된다. 7일에는 LG컵 풋살대회가 열렸고, 일본에서 1천년 전부터 행해졌던 '게마리(蹴鞠)'라는 놀이도 재현된다. 게마리는 귀족들이 사슴 가죽으로 만든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며 놀던 일종의 '원시 축구'다. 사이타마 민족문화센터에서는 '마리(공)와 문화'라는 제목으로 서민 놀이문화 전시회도 연다. 시민들은 사이타마를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학 접기 등 종이 공예법을 가르쳐주고,가마 태워주기 등 이벤트도 열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를 본 관광객이 가까운 도쿄로 빠져나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볼거리·즐길거리가 풍성한 도쿄를 두고 굳이 사이타마에 머물겠느냐는 것. 7백80억엔(약 7천8백억원)을 들여 축구 말고는 할 게 없는 스타디움을 지은 데 대한 불만도 여기서 나온다. 원래 사이타마현은 고교 축구가 매우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망한 꿈나무들이 속속 도쿄로 빠져나가고 있다.사람들의 사고와 생활 패턴도 도쿄 중심이 돼버렸다. 쓰치야 지사는 이런 종속현상을 바로잡고, 현민들의 자긍심과 독자성을 살리는 계기로 월드컵을 붙잡은 것이다.

이 지역 일간지 사이타마신문의 기자들도 "사이타마 사람들이 사이타마에서 보고, 즐기고, 돈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게 여론"이라고 말했다.사이타마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는 것이다.

사이타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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