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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거창했지만 … 역대 정권 제대로 된 군 개혁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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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군(軍) 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현대전의 특징은 육·해·공군이 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긴밀히 협력해 합동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전과 미래전에 대비한 건군 이래 최대의 군 개편이 이뤄진 것이다.”

육사 11기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내놓은 회고다. 그가 언급한 ‘건군 이래 최대의 군 개편’은 1988년에 탄생한 ‘8·18 계획’이다. 합동참모본부가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날짜(8월 18일)에서 이름을 땄다. 미군이 갖고 있던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한 이후를 대비해 자주국방력 강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국방 개혁안이다. 군령과 군정의 분리, 합참의장의 군령권을 강화한 현재의 3군 합동군 체제가 이를 통해 이뤄졌다. 합참의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미국의 ‘골드워터-니콜스 법안’을 참조한 것으로서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08년 10월 경북 포항시 도구해안에서 우리 군이 연례 합동 상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군 상륙함에서 출동한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가 중형 헬기의 지원을 받으면서 해안 상륙을 시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국방 개혁에 손을 댔지만 백지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선진 강군’을 위한 15년 플랜을 담은 ‘국방 개혁 2020’을 선보였다. 이를 법제화(국방개혁법)해 개혁안 이행을 보장하려 했다. 하지만 육·해·공군 간 갈등과 재원 확보 문제로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육군 병력의 대폭 감축(17만7000명)과 군의 첨단화를 추진하면서 예산 확보를 보장하지 못해 초기부터 ‘부도수표’가 될 것이란 지적이 적잖았다. 전문가들은 국방부 장관이 자주 바뀌는 우리 현실에서 장기간의 ‘개혁 드라이브’가 필요한 국방 개혁을 관철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청사진은 근사하게, 착수는 천천히=전문가들은 17만7000명 감군을 담은 ‘국방 개혁 2020’처럼 개혁안들이 목표는 거창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실행의 시점을 늦춰 잡는 데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군에서는 정권만 바뀌면 새 개혁안이 나온다는 사실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며 “따라서 개혁안을 만들 때마다 근사한 청사진을 내놓되 현 정부보다는 주로 다음 정부에서 실천하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도 개혁안을 만들고 있지만 상당수 군 간부는 ‘1~2년 만 버티면 다음 정부가 새 개혁안에 착수할 것’이라고 내심 믿고 있을 것”이라며 “개혁안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당장 착수하는 내용을 담아야만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1월 정부 인수위원회에 참가했던 한 인사는 “비밀로 분류된 ‘국방 개혁 2020’을 열람해보니 벌써 계획과 실제가 어긋나 있더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국방 개혁 2020’을 수정했다.

◆각 군의 집요한 반발=육·해·공군의 집요한 저항도 국방 개혁을 무너뜨리는 주요인이다. ‘국방 개혁 2020’ 추진 과정을 지켜봤던 김종대 전 청와대 행정관은 당시 비사를 담은 책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에서 ‘육군은 사실상 육군 개혁으로 가고 있는 것에 엄청난 불만을 가졌다. 육군 고위 장성들은 사석에서 (해군 출신의) 윤광웅 국방장관의 직함을 빼고 이름만 부르며 노골적으로 능멸했다’고 적었다. ‘8·18 계획’ 추진 당시에는 해·공군의 저항이 거셌다. 육군 중심으로 군 구조가 개편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특별취재팀=김민석 군사전문기자, 강주안·고성표·정용수·권호 기자, 워싱턴·도쿄·파리=최상연·김동호·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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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영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자문위원(전 국방부 혁신단장), 구본학 한림대 국제대학원대학 교수, 김경덕 전 국방개혁실장, 김관진 전 합참의장, 김근태 전 1군사령관, 김연철 한남대 교수, 김윤태 한국국방연구원 전력소요검증실장,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한나라당 의원), 김종민 전 방위사업청 차장(전 잠수함전단장), 김종탁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종하 한남대 교수, 김학송 전 국회 국방위원장,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전 국방보좌관), 노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류희인 전 NSC 위기관리센터장, 박균열 경상대 교수, 박창권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해군 대령), 박휘락 국민대 (초빙)교수,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 윤일영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윤우주 전 국방부 기본정책과장, 이경재 원광대 교수,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최돈걸 전 병무청장, 한용섭 국방대 교수, 홍두승 서울대 교수, 홍성민 안보네트웍스 소장, 홍성표 국방대학교 교수(공군 대령), 황인무 육군 교육사령부 전력발전부장(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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