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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정신이 바뀌어야 세대교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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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6·2 지방선거에서 친노 486들이 대거 당선됐다. 이에 놀라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젊고 활력 있는 한나라당”을 주문하자 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인사들이 잇따라 당권에 도전하고 있다. 소장파는 선거 직후부터 당·정의 인적 쇄신을 주창하더니 대통령 발언 이후엔 목소리를 더 키우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세대교체가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대교체가 폭발력을 지니려면 나이가 아니라 정신의 교체여야 한다. 새로운 내용이 없이 나이만을 앞세우면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요, 비단을 걸친 뱀이며, 립스틱을 바른 돼지다. 영국의 새로운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44)은 2005년 39세에 당수로 선출됐다. 당시 보수당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짓눌려 있었다. 당원들이 젊은 캐머론을 새 지도자로 뽑은 건 그가 새로운 기치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장을 중시하는 정통 보수주의를 유지하되 약자에 대한 배려를 확대하는 현대판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영국인에게 제공하겠다”고 천명했다. 보수당의 약점을 정책으로 보완한 것이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이런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적잖은 이가 개혁보다는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기회를 노린다. 정권이 광란(狂亂)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했을 때 칼을 뽑아 들고 나선 이는 없다. 그러다가 정권이 선거에서 지면 정권을 공격하고 책임론을 들고 나온다. 2008년 여름 광우병 파동 때 몸을 던져 거짓의 파도에 맞선 소장파가 있었는가. 되레 포퓰리즘에 편승해 재빠르게 ‘쇠고기 재협상’을 들고 나온 이들만 있었다.

초선 의원들은 이번에 연판장에서 ‘4대 강 민심’ 운운했다. 4대 강은 지역과 사업 방식에 따라 여론이 다양하다. 그런데도 민심이라고 뭉뚱그리면 반대론자의 정략적인 비판에 끌려 다니는 게 된다. 신중함이 없이 걸핏하면 민심이라는 벽 뒤에 숨는 건 전형적인 구태(舊態) 정치다. 물론 공사를 성급하게 하는 것에 적잖은 비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소장파가 이를 중시한다면 지난해 가을 정부가 4대 강 동시 착공을 강행할 때 분연히 일어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나이를 거론하는 건 적절한 통치가 아니다. ‘활력’은 괜찮지만 ‘젊음’을 언급하는 건 위험한 표현이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대통령이 ‘젊음’을 강조하면 고령은 어디로 가는가. 일본은 대표적인 고령화 사회다. 그런 일본인이 애송하는 시에 ‘청춘(Youth)’이 있다. 20세기 초 미국 시인 새뮤얼 울먼은 이렇게 읊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의 상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요, 상상력의 수준이며, 감정의 생기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만 믿고 덤비는 소장파라면 울먼의 시를 읽어봄 직하다. 대통령의 말에 놀란 노·장(老·長) 세대가 있다면 울먼의 이 구절도 들어보시라. “단지 햇수로만 늙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상(理想)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다.” 레이건은 공산주의 철의 장막을 부수겠다는 이상을 버린 적이 없다. 레이건에게 누가 나이를 얘기할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