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이홍구 칼럼

6·25의 회상, 월드컵의 흥분, 통일한국의 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6·25나 월드컵이 범국민적 경험임에는 틀림없지만 국민 각자의 생각이나 느낌은 그 내용이나 강도에 있어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60년이란 세월이 지나다 보니 할아버지·할머니 세대, 아버지·어머니 세대, 아들·딸들의 세대, 더 나아가 손자들의 세대로 적어도 4대에 걸친 역사인식이나 문화적 감각에는 현저한 차이와 다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된다. 6·25를 경험했거나 듣고 자란 60, 70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한 40, 50대, 월드컵을 포함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20, 30대,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사이버시대의 기수가 되겠다는 10대까지를 포함해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크고 특이한 세대 간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통합보다는 분열의 잠재적 요인이 되고 있다. 벌써부터 그러한 분열의 조짐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선 어느 사회나 특히 선진국일수록 세대 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수다한 과제를 안게 마련이다. 그중에서 우리의 경우가 유별난 것은 냉전의 막이 내린 지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한반도에서는 분단과 대결이 지속되며 6·25전쟁의 긴장이 그대로 유지된 채 세대 간 경험의 차이를 넘어선 인식의 통합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으론 21세기 지구촌 건설에 앞장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20세기 냉전적 대결의 태세를 풀 수 없는 상황의 이중성이 우리 국민을 답답하게 만들고 때로는 세대 간 인식의 차이와 거리감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이들 네 세대가 오늘의 한국이 처한 상황의 이중성의 성격을 함께 이해하고 대처하려는 가족대화의 문을 열고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반도의 긴장 상태는 남북 대결이란 차원보다도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결이란 차원에서 근본 원인을 찾도록 인식의 초점을 전환시켜야 한다. 냉전의 막이 내리면서 세계는 개방과 교역을 통한 공동번영의 길로 들어서며 지구촌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하고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이 바로 그렇듯 함께 나아가는 지구촌의 축제가 아니겠는가. 우리 한국은 국가 간의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지구촌 모든 시민의 자유와 복지를 향상시키자는 보편적 규범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하며 역사의 예외지대에 남겠다고 주장하는 북한지도부의 고집이 우리에게 상황의 이중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영원한 예외는 없다. 슬기로운 우리 민족이 역사의 예외지대에 갇힌 채로 무한정 살아갈 리 없기에 오늘의 북한이 고집하는 예외성도 결국 일시적 현상일 것이다. 전근대적인 일가세습 통치나 군국주의 시대의 유산인 선군정치와 같은 시대착오적 기형체제의 굴레로부터 북한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인내력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정한 국가체제보다도 훨씬 원초적인 것은 수천 년을 이 땅에서 함께 살아온 민족사회임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국민 모두는 인간적 존엄성과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꿈과 역사적 소명의식을 굳건히 간직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천안함 사태가 보여준 군사적 도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기본 복지와 인권 문제, 탈북자의 생존 문제 등은 민족공동체 건설의 핵심 과제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돕는 적극적 지원에 앞장서는 미래지향적 보수와 북한주민의 인권 수호와 독재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이성적 진보의 출현을 기대하게 된다.

나라와 자유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가를 되새겨보려는 6·25세대,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공동체의 필수요건임을 강조하는 민주화 세대, 그리고 세계 속에 우뚝 서는 통일된 대∼한민국을 자신 있게 외치는 월드컵 세대의 대화와 합창이 본궤도에 오르는 6월을 만들어가 보자.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