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제2부 薔薇戰爭 제2장 揚州夢記 : "나는 상인이 될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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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보고가 자신이 선 그 자리를 가리키며 자신 있게 말하자 정년이 받아 말하였다.

"이 땅이 새로 씨를 뿌릴 바로 그 땅이라고 하셨습니까, 형님."

정년은 장보고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하오나 당나라의 너른 땅도 일찍이 저희 두 형제에게는 '장소가 좁아서 마음껏 춤을 출 수 없는 땅'임을 깨닫지 않으셨습니까."

정년이 한탄하였던 '장소가 좁아서 마음껏 춤을 출 수 없음'은 일찍이 장사(長沙)의 정왕(定王)이 한나라의 경제(景帝)에게 자신의 국토가 비좁음을 하소연하면서 '지소부족회선(地小不足廻旋)'이라고 탄식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훌륭한 재능을 가졌으나 영토가 좁아서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음'을 이르는 것이다.

그러자 장보고가 다시 말하였다.

"군문이라 하여서 더 이상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땅이 아닌 것을 아우인 너도 잘 알고 있지 아니하냐. 새 황제가 즉위하신 이후로 해마다 팔리(厘)의 병사들이 강제로 제대하여 군문을 떠나고 있지 아니하냐."

장보고의 말은 사실이었다.

『구당서』에 '목종이 황제에 오른 장경 원년부터 해마다 8%의 군사들이 감병정책에 따라서 강제로 퇴역되고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너와 나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강제로 퇴역될 것이다."

"하오면."

정년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형님께오서는 군문을 나와 무엇을 하시겠나이까."

그러자 장보고가 진지한 얼굴로 정년을 마주보며 말하였다.

"나는 상고(商賈)가 될 것이다."

상고란 말은 상인을 뜻하는 중국말로 그 말을 들은 순간 정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또다시 소금수레를 끄는 말이 되시겠다는 말이오. 또다시 염차지감(鹽車之憾)이 되시겠단 말이오."

염차지감.

일찍이 소금을 실은 배를 타고 운하를 오를 때마다 탄식하였던 장보고의 자조적인 말.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천리마라 할지라도 운이 나쁘면 소금수레를 끌 수 있다는 한탄이 아니었던가. 그러자 장보고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아니다. 이제는 소금수레는 영원히 끌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천리를 하루에 달릴 수 있는 천리지족(千里知足)을 가졌을 뿐 아니라 천리 밖의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천리안까지 갖추게 되었는데, 어찌 또다시 소금수레를 끄는 당나귀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냐."

장보고의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장보고의 말은 또한 사실이었다. 장보고와 정년이 처음 당나라에 들어올 때만 하여도 두 사람은 공험조차 없는 불법 입국자로 자연 가장 낮은 장사였던 소금과 목탄에만 종사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번진 토벌에 공을 세워 군중소장에까지 이르는 당당한 신분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의 체류로 당나라의 말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당나라의 풍습과 모든 지세에 형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도 당나라의 군대에서 큰 무공을 세운 사실은 앞으로 있을 장보고의 활약에 큰 프리미엄이 될 수 있었던 특권이기도 했던 것이다.

천리안(千里眼).

문자 그대로 천리 밖의 먼 곳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눈. 북위(北魏)때의 자사 양일(楊逸)이 관내에 거미줄처럼 쳐놓은 정보망을 통해 부하 관리들의 행위를 철저하게 감시함으로써 관리들은 양일이 '천리안을 가졌다'하여 게으름을 피우거나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었다는 『위서(魏書)』의 고사에서 나오는 말.

장보고가 천리안을 갖게 되었다는 이 말은 당나라에 들어온 지 12년만에 처음으로 의형제 정년에게 털어놓은 중대한 고백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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