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생 달래준 나만의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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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고등학교 때 답사차 왔던 그 대학의 캠퍼스에 나는 새내기 입학생이 돼 들어왔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소회보다는 멀리 집을 떠나왔고 이제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실존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기숙사에 짐을 푼 그 날부터 매일 저녁이면 어스름이 깔리는 교정을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올록볼록한 쟁반에 밥과 반찬을 받아 먹는 단체 생활은 어색했고, 사투리가 심한 기숙사생들은 저마다 서로 낯을 가렸다.

어떻게 해서 밥을 먹고 나자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마치 식후에 냉수를 따라마시듯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어두워져오는 저녁 운동장으로 숨어들었다. 석조계단이 둥근 돔 형식으로 뻗어나간 그곳은 낮과는 사뭇 표정이 달라 보였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이 한없이 넓어 보였고 그래서 어느덧 나는 쓸쓸해졌다.

고향의 바람과는 맛이 다른, 혼자서 맞이하는 저녁 대기는 온갖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아 거북한 몸을 석조계단에 누인 채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는 일은 생각처럼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나는 앞으로도 더 자주 이곳을 찾으리라는 예감에 몸을 떨었다. 서울 친구들은 고향을 묻고는 금방 시골유학생 대접을 했다. 내가 여고 때까지 생활했던 도청소재지인 고향이 시골로 불리는 것이 다소 불만이었지만 그녀들의 당당함에 별 이의를 달지 못한 채 시골유학생다운 표정을 지어보였으리라.

이후 운동장 잔디밭에서 거침없이 뒹굴던 친구들이 일제히 빠져나간 교정은 이제 나만의 것이 되었다. 나는 그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교정을 나의 숨결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학우들과 나눠가지지 않아도 되는 저녁의 교정, 함성 소리가 없는 운동장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나 자신도 무어라고 대꾸해주었을 법한데 불행히도 약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초봄의 저녁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면 비로소 몸을 추슬러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그후로도 한동안 나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운동장을 찾곤 했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더 빨리 서울 생활에 적응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런 다소 유폐적인 성향이, 또 그렇게 축적된 시간들이 책을 읽거나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오늘날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내게는 은밀한 나만의 그런 공간이 없다. 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어딘가에서 몸을 누인 채 가만히 저 심연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싶어진다. 아주 가만히.

정은숙

<시인·마음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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