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사이에 천국은 존재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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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요즘 젊은 작가들은 무엇을 화두로 고민할까. 그것은 현대미술의 중요 흐름인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지난 22일부터 열리고 있는 '2002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은 이같은 화두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시각을 보여준다(4월 14일까지).

올해의 주제는 '우리 안의 천국'. 전시를 기획한 김혜경 큐레이터는 "인간과 인간,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 사이에 천국이 있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 제목"이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15명의 작가는 고승욱·권기수·김기라·김기수·김옥선·박형근·손성진·양혜규·윤아진·이미혜·장지희·정성윤·조은희·조해준·한진수 씨 등이다.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 등 현실 속에서 맺는 관계와 그 사이의 소통의 문제라는 무거운 주제에 접근하는 신세대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그 공통점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담거나 이를 육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김기라(28)씨는 '마리아의 노래'라는 비디오를 보여준다. 다운증후군이나 조로증에 걸린 환자를 통해 정상인과 장애인을 구분하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인도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어본다.

훌라후프를 하는 여성 장애인의 천진한 모습을 '정상적인 시선'으로 찍은 비디오 화면은 가슴에 많은 울림을 준다.

김기수(34)씨는 재개발이 진행 중인 폐가옥에 남아 있는 가구를 부수어 그 잔해를 전시장 바닥에 깔아놓은'왕십리 2동의 폐가옥'을 전시 중이다. 도시 빈민이 살아가는 삶의 편린을 손발에 닿는 구체적인 잔해로 전달하는 설치다.

김옥선(35)씨는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이 겪는 대화의 단절이나 몰이해, 삶의 아이러니를 사진으로 담았다.

'옥선과 랄프'라는 작품명처럼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와 병행해 담담하게 보여준다.

손성진(32)씨는 목욕업과 관련한 오브제와 회화작업을 코믹하게 제시했다.

'때돈'이라는 전시 제목은 가업으로 목욕탕을 운영하는 작가 자신이 때밀이들이 번 돈으로 생활한다는 자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혜(33)씨의 '시간 또는 시간차'는 안과 밖, 앞과 뒤, 무거움과 가벼움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이것인 동시에 저것'이라는 통합적 시각을 제시한다.

장지희(28)씨는 공중에 설치된 스크린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높은 곳을 향해 뛰어오르는 사람들을 담은 비디오 작품 '늪'을 상영 중이다. 자신의 욕망을 향해 높이 뛰지만 결국은 욕망의 늪에 더욱 빠져들어갈 뿐이라는 은유를 담고 있다.

조혜준(28)씨는 미술교사이던 아버지가 제작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상을 전시장에 갖다 놓는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전체주의 문화 속에서 살았던 아버지의 일상과 그 속에서 꿈꾸고 아파했던 자신의 과거가 다큐멘터리 형태로 전시된다.

김혜경 큐레이터는"거대담론보다는 소담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신세대 작가들의 문제의식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02-760-450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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