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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民 기념 강연회] "북핵 이미 평화적 해결 궤도 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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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첸치천 전 중국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김상선 기자]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참가국들의 공동 노력으로 6자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야 한다."

첸치천(錢其琛.76) 전 중국 부총리 겸 외교부장은 13일 이같이 말했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유민문화재단과 중앙일보 주최로 열린'제6회 유민(維民)기념 강연회' 자리에서다. 이 강연회는 고 유민 홍진기(洪璡基) 중앙일보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고 있다. 첸 전 부총리는 1992년 한.중 수교 과정에서 중국 측 산파역을 맡았던 중국 외교의 산증인. 이날 강연회에 초청돼 한.중 관계에 대한 평가와 전망, 아시아의 도전과 비전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중.한 양국의 공동 노력으로 한반도 핵문제는 이미 대화와 평화적 해결이라는 궤도에 진입했다"며 "화해.협력은 아시아의 미래를 열어줄 핵심 가치"라고 말했다. 첸 전 부총리는 "중.한 수교 이후 1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양국은 그동안의 협력을 통해 큰 성과를 올렸다"고 전제하고 "동양 문명이라는 공동의 재산이 양국 국민을 긴밀하게 묶어준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패널로 나선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은 "한.중 관계 발전에서 일반적으로 동양문명의 의미와 역할을 과대 평가하는 측면도 있다"며 이견을 나타냈다. 김 원장은 "예전에는 한.중 양국 사이에 동양문명이 없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양국 관계가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데는 동양문명 이외의 요소, 즉 양국이 공통으로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북핵 위기, 북한 개방 등 동북아의 안정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중국이 좀더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첸 전 부총리가 "중.한 수교는 양국 지도자들에게 관계발전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던 전략적 결정"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김 원장은 "중국과 한국의 성장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면서 "한국은 아무리 발전해도 국제질서에 일으킬 파장이 제한적이지만 중국은 지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북아 지역과 세계 범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안보 분야에서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종욱 아주대 석좌교수는 "중국은 패권을 지향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주변국들이 두려움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협력하도록 중국도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첸 전 부총리는 "일리있는 지적"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 실천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성장에 따른 미국 등 서방의 '중국 위협론'등도 화제가 됐다. 김 원장은 "중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적 의미를 갖는다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면서 "한반도가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미묘한 입장을 인정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눠 평화.안정 구조를 구축하는 데 양국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첸 전 부총리는 "군사력으로 안보를 모색하는 것은 구시대의 안보관"이라며 "이런 사고로는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냉전시대 국제관계가 분명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 국가들은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안정을 구하고 상호 신뢰.호혜.평등.협력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안보관을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경제.안보적 이익추구는 주변 국가의 밥그릇을 키우고 주변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정 교수도 "중국이 2020년까지 중산층 생활 수준을 뜻하는 샤오캉(小康)단계를 실현하려면 평화로운 주변 정세가 필수적"이라며 "이런 이유에서 중국은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상호의존성과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첸 전 부총리는 한.중 관계의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보았다. "두 나라 관계는 아직도 매우 젊어 마치 오전 8시나 9시의 태양처럼 생기발랄하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중국.일본 및 동남아에서 대유행인 한류(韓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한류는 차가운 물결이라는 뜻의'한류(寒流)'와 발음은 같으나 뜻은 정반대다. 한국의 한류는 따뜻한 문화의 물결"이라고 평가했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는 "첸 전 부총리가 14세 때던 42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앞날을 내다보는 역사적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 항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본 것 아닌가"라며 덕담했다.

한편 강연에 앞서 첸 전 부총리 내외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내외 등 양측 관계자와 차를 마시며 담소했다. 홍 회장은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발간한 그의 회고록과 관련, "훌륭한 회고록을 발간하게 해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린다"고 말했고, 첸 전 부총리는 "출판하는 데 노고가 많으셨다"고 사의를 표했다.

장세정.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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