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정책-日실패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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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적시타를 날려야 할 때 '적시 에러'를 범하고 말았다." 일본의 전문가들이 1980년대 말 유례 없는 거품경제를 불러일으켰던 저금리 정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 거꾸로 금리를 내리는 바람에 거품을 키웠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저금리 정책은 선진국들이 달러 강세를 조절키로 한 85년의 플라자합의에서 비롯됐다. 86년 7월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50엔대에 접어들자 일본 재계에서는 '엔고 불황론'이 터져 나오고 정치권이 이에 합세해 정부에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라고 요청했다. 여기에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 내수확대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했다.

일본은행은 이에 밀려 86년 11월 재할인금리를 3.5%에서 3.0%로 낮춘 데 이어 87년 5월엔 2.5%로 내렸다. 이는 당시까지만 해도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그뿐 아니다. 대장성은 87년5월 내수확대를 꾀한다며 6조엔의 재정을 풀었다. 금융과 재정 양쪽에서 동시에 저질러진 무모한 경기대책은 맹렬한 기세로 거품을 키워나갔다.

뒤늦은 분석이지만 당시 일본기업들은 엔고로 수입 원자재를 싸게 구입하면서 오히려 실속을 챙기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엔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국내경기는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금리가 떨어지고 뭉칫돈이 풀려나오니 증시와 부동산시장이 과열됐다. 재테크 열풍이 일었다.심지어 사장실 옆방을 딜링룸으로 꾸며 사장이 직접 주식외환 투자를 진두지휘하는 기업들도 나왔다.

저금리로 은행돈을 빌리는 데 불편을 못 느낀 기업들은 설비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다. 일본기업의 부동산투자는 84년 4천1백50억엔이었던 것이 90년엔 13조1백70억엔으로 31배로 불어났다.

투자열풍으로 주요 대도시의 부동산값은 85-90년 중 약 31배로 뛰어올랐다. 일본땅을 모두 팔면 미국 전체를 4개나 사들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닛케이 평균주가도 89년말 38,915엔으로 정점에 달했다. 플라자합의 후 4년 만에 3배로 뛰어오른 것이다.그래도 거품에 취해서인지 모두들 주가는 계속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노무라(野村)증권은 95년까지 주가가 80?000엔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저금리의 부작용은 거품이 꺼진 뒤에야 비로소 지적됐다. 하야미 마사루(速水優)일은 총재도 87년 당시 금리를 빨리 올렸어야 했다?며 10여년 만에 저금리 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일본은행은 99년부터 불황탈출을 위해 다시 저금리 정책을 취하고 있다. 단기콜금리를 아예 0%로 누른 것이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풀어도 기업으로 흘러들지 않은 채 금융권에 고여 있을 뿐이다. 부실채권이 늘어나거나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초저금리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투자와 소비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거품경제의 후유증으로 생겨난 부실채권이 아직까지 일본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의 안세일(安世一)부소장은 저금리만으로 일본경기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부실채권을 빨리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남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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