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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정성화, 자신을 믿고 관객을 믿고 오래 기다린 자의 뜨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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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안주머니에서 꺼낸 건 A4 용지였다. 순간 객석은 뻥 터졌다. 뒤이은 그의 한마디. “이제야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 수상 소감은 몇 년째 준비했습니다.” 그는 땀을 훔쳤다.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종이를 보며 침착하게 읽어 내려갔다. “믿음이었습니다.” 황정민의 ‘밥상’ 소감을 넘어서는 정성화의 ‘믿음’ 소감의 시작이었다.

뮤지컬 배우 정성화(35). 최근 4년 동안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매번 탈락하며 ‘불운의 스타’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배우. 하지만 지난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그는 5전6기 끝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뭘 해도 중간 이하였고 별 열정도 없던 저를 뮤지컬에 빠지게 만들어 준 건 설도윤 대표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만류를 일축하고 저를 돈키호테로 만들어 준 건 신춘수 대표님의 믿음이었습니다.”짧은 문구엔 자신의 뮤지컬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박또박 읽어가던 그도 가족 얘기가 나오자 벅차오른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울먹거렸다. 그리고 마지막, “심사위원님들, 종종 믿어주시길 바랍니다.”솔직함과 애틋함, 진지함과 코믹함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명문이었다. 정성화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단지 그를 최고의 뮤지컬 스타로 등극시킨 것만이 아니었다. 왜 시상식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진정 관객을 감동시키는지 그는 온몸으로 보여줬다. 수상 소감을 마치고, 하늘을 향해 쭉 뻗어올린 정성화의 오른손. 한국 뮤지컬사(史)에 남을 명장면의 마무리였다.

“새벽까지 축하 파티하고 5시쯤엔가, 부모님이 계시는 부평에 갔어요. 뭔가 멋있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그저 멋쩍게 웃기만 한 거 있죠.”

정성화와의 인터뷰는 ‘더 뮤지컬 어워즈’가 있은 지 나흘이 지난, 11일 진행됐다. 아직 남우주연상 수상 감격에 조금 취한 듯 보였다. 활기찬 말투, 가능하면 유머를 섞으려는 센스, 어색한 침묵이 있을 때면 금세 화제를 돌리는 순발력 등. 무대 위에서 본 듯한, 혹은 한번쯤 상상했을 법한 배우 정성화의 모습과 실제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농담을 한 건지 수다를 떤 건지 잘 모를 인터뷰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상식 전 귀띔은 받으셨나요?

“전혀요. 왜들 그러잖아요, 시상식 당일 아침에 ‘수상소감 준비하라’ ‘꼭 참석해 달라’ 등의 전화 받으면 상 받는 거라고. 사실 시상식 며칠 전부터 매니저한테 ‘뭐 전화 받았어?’ 묻곤 했어요. 아무 연락이 없다기에 ‘이번에도 미끄러졌구나’ 생각했죠. 윤호진 대표님 옆구리 찔러도 ‘어워즈 그쪽 애들 독해. 나도 말이 집행위원장이지, 아무 말도 안 해줘’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수상소감 준비하셨잖아요.

“시상식 때 한 말 빈말이 아니에요. 몇 년째 준비 한 거 맞고요. 시상식 아침에 일어나서 ‘혹시 상 받으면 정신없어서 할 말 못하지 않을까’ 싶어 이번에 아예 적어본 거죠. 아이폰으로 썼어요. 몇 번 고쳤는데, 그래도 처음 쓴 게 가장 좋더라고요.”

-글이 참 좋았어요. ‘믿음이었습니다’로 이어지는 문장도 그렇고.

“운율 맞추는 거 좋아합니다. 일기도 쓰는 편이고요. 팬클럽 사이트에 가끔씩 들어가 글을 남기기도 해요. 참, 트위터도 합니다. 원래 팔로어가 2000명 정도였는데 상 받고 하루 만에 3000명을 훌쩍 넘겼어요.”

-정말 기쁘셨나 봐요.

“2007년 ‘아이 러브 유’로 신인상 후보에 올라 지금껏 다섯 번 후보가 됐어요. 한 번도 못 탔죠. ‘상 받는 게 뭐 대수랴’ 마음속으론 다짐하면서도 그게 그렇지 않아요. 개그맨 출신이라 괜히 텃세 받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혼자 서럽기도 하고. 아마 수상이 빨랐으면 지금처럼 기쁘진 않았겠지만, 못 받았으면 괜히 세상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매력적인 바리톤. 정성화에게 늘 따라다니는 말이다. 고급스러운 목소리로 하이톤을 찍어 올릴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성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따로 레슨을 받은 적도 없다. 중학교 때 예쁜 여학생을 보기 위해 교회 성가대를 한 게 그나마 노래를 배운 기회였단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6년간 베이스를 맡았어요. 찬송가가 전부 533장인데 그걸 다 부르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한 셈이죠.“ 또 한 차례 전환점은 뮤지컬 데뷔작 ‘아이 러브 유’를 할 때였다. “제 목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됐다고 할까요. 숨은 언제, 왜 가쁜지, 어떻게 하면 저질 목소리가 나는지 등등. 무대가 최고의 교육이에요.”

-뮤지컬 배우 정성화를 얘기할 때 2007년 ‘맨 오브 라만차’를 빼놓을 수 없겠죠.

“직전에 ‘올슉업’에서 데니스 역을 했죠. 공연 중간쯤엔가 신춘수 대표가 보자고 하시더니 산초 역을 하자는 거예요. 데니스나 산초나 비슷한 배역이잖아요. 그럼 발전이 없다 싶어 대뜸 돈키호테 역 하겠다고 했죠. 신 대표가 난감한 눈치였어요. ‘그럼 뭐, 오디션을 보든가….’ 오디션 전날 파티가 있어 술이 덜 깬 상태로 오디션을 봐 ‘무조건 떨어졌다’ 했죠. 근데 노래 한 곡 부르게 하더니 ‘대사 해라’ ‘뭐 해라’ 주문이 많았어요. 8시간이나 봤어요. 일주일 뒤인가 합격 연락을 받았는데, 이번에 상 받은 거만큼 기뻤어요.”

-‘맨 오브 라만차’를 한 뒤 달라진 게 있나요?

“노예근성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그전까진 연출가가 하자면 전 무조건 다 맞추었어요. 그게 내 음역대랑 혹은 내 연기 스타일과 안 맞아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근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건방지거나 어떤 영역을 넘어서면 안 되겠지만, 배우란 자기만의 방식이 또 있잖아요. 변화에는 탄력적이되 자기 색깔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할까요. 의견을 내는 만큼 책임감도 생기게 됐고요.”

-‘맨 오브 라만차’에선 조승우, ‘영웅’에선 류정한 등 당대 최고의 뮤지컬 배우와 같은 역을 했습니다. 라이벌의식은 없었나요.

“한번은 ‘맨 오브 라만차’를 본 한 선배가 분장실로 찾아와 ‘실망했다’ ‘연기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일장 훈계를 하더군요. 라이벌이란 생각을 하면 의식하게 되고, 비교하게 되고, 그럼 또 상처받고. 그래서 안 해요. 그냥 내 연기를 믿고 갈 수밖에요. 전 ‘맨 오브 라만차’ 하면서 절대 애드리브를 하지 않았고, 조금도 웃기려 하지 않았어요. 개그맨 출신이다 보니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질까 봐 더 원칙적으로 한 면도 있고요. 승우는 정말 좋은 배우에요. 릴렉스가 뭔지 잘 알고 있고 무척이나 섬세하고요. 정한이형은 만날 아프다고 징징대요. 연습 제대로 안 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주변을 불안케 하다가, 최종 리허설 때쯤 되면 엄청난 에너지로 깜짝 놀라게 하지요.”

-앞으로 계획은요.

“영화하고 싶고요. 제안 받은 게 있어 상의 중입니다. 드라마 얘기도 있고요. 근데 이젠 남우주연상 받아 웬만한 조연은 못 할 것 같아요. 어떡해요. (개그맨 박성호씨 톤으로) 괜히 상 받았어, 괜히 상 받았어∼.”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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