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로 가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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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버지가 역사적인 일을 시작하고 아들이 그것을 완성한다면 그들은 만인이 부러워할 행복한 부자(父子)일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그의 아버지에게 그런 행운을 가져다 주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걸프전에서 그때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후세인을 대통령 자리에서 축출하고 이라크를 전제정치로부터 '해방'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후세인 제거가 미국 정부의 최대 과제였다.

이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의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 외교평의회(CFR)의 국제정치 전문가 월터 미드도 어제 아침 올 여름께 20만명의 미군이 투입되는 '제2의 걸프전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의 보도도 그런 방향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아랍국가들과 유럽 우방들이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것이 큰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딕 체니 부통령이 지난주 중동지역을 돌면서 이라크 공격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지만 오히려 완강한 반대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미드에 따르면 아랍·이슬람권과 유럽국가들의 반대가 이라크 공격으로 가는 미국의 발목을 잡지는 못한다. 부시 정부는 불리한 세계여론을 극복할 확실한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움직여 이라크 응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는 처음부터 거부권 행사가 아닌 기권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프랑스인데 그동안의 설득으로 프랑스도 최소한 기권으로 입장을 바꿨다.

지금부터는 관심의 초점을 이동해야 하겠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인가가 아니라 제2의 걸프전쟁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며, 미국의 전쟁목표는 무엇이며, 그것이 국제정치와 경제에는 어떤 파란을 몰고 올 것인가를 묻는 게 좋겠다.

당연히 미국의 전쟁목표는 후세인 제거다. 후세인한테서 박해받는 쿠르드족을 동원하면 군사적으로는 크게 보탬이 된다. 그러나 동맹국 터키의 입장을 생각하면 전쟁이 끝난 뒤 쿠르드족의 정치적 발언권이 대폭 강화되는 조치는 삼가야 한다. 이란의 눈치를 살피고 이란을 경계하면서 시아파 이슬람교세력과 공동전선을 펴거나 전폭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

당장은 후세인의 카리스마를 대신할 인물이 없는 게 큰 고민이다. 그러나 후세인을 축출한 뒤 미국이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경제재건 계획을 펴면 대중을 사로잡는 마력(魔力)에서는 후세인의 아류인 인물이라도 전제국가가 아닌 새로운 이라크의 지도자로 연착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고 이라크 공격의 청사진이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이 이슬람의 몇몇 나라, 아주 운이 나쁘면 많은 나라에서 반미항쟁을 촉발해 친미정권이 무너지고 과격한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런 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된다.

한국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이라크전쟁으로 국제원유값이 폭등해 한국경제를 포함한 국제경제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다. 지난해 9월 배럴당 30달러 하던 원유값은 11월에는 16.65달러까지 떨어졌다가 팔레스타인 사태의 악화와 이라크 공격설에 자극받아 24달러로 반등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한 올 평균 원유값 18.50달러보다 높은 수준이다. 프린스턴대의 알란 블라인더 교수는 이라크전쟁으로 원유값이 40달러나 50달러까지 폭등하면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멈출 것으로 걱정한다.(파이낸셜 타임스 3월 19일자)

우리가 주목할 다른 하나는 이라크 공격이 북한에 미칠 심리적인 충격이다. 미국이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분류된 이라크를 실제로 공격하고 후세인이 제거된다면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훨씬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벼랑끝 외교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 제2의 걸프전쟁은 '빛과 그림자'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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