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 총재의 어설픈 수습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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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내분 수습책으로 내놓은 '총재권한대행' 카드는 복잡하고 어정쩡하다. 비주류가 제기한 논란은 집단지도체제의 조기 도입 문제며, 李총재가 대선 후보(대권)만 하고 총재직(당권)은 맡지 말라는 게 핵심 요구였다. 그러나 李총재의 답변은 대선 후보와 총재직을 나눌 수 없고, 다만 총재 자리에 권한대행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선 후보 출마 선언 때 권한대행 지명→5월 전당대회 때 대선 후보와 총재 경선 동시 출마→총재로 재선출되면 권한대행을 다시 지명한다는 내용이다. 李총재가 숙고 끝에 내놓은 만큼 명쾌하고, 획기적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여론의 예상이나 기대와 딴판이며 권한대행이란 절충은 어설프고 미지근하다.

李총재는 자신이 당무 2선으로 후퇴하는 것이어서 집단지도체제 정신을 살린 것으로 자평했다. 총재 경선에도 나서는 이유에 대해 자신이 출마하지 않으면 "경선이 과열돼 불쾌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한나라당이 과열·혼탁 같은 경선 문제점을 자정(自淨)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실토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또 큰일(대선)을 앞두고 작은 일(총재직)에 집착한다는 평판을 낳고 있다. 정치의 묘미를 맛보게 해주는 민주당 국민경선제의 신선함이나 활력과 대조적이다. 권한대행이라는 간판에 합의제나 민주적 당 운영을 담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때문에 제왕적 총재 체제 청산를 교묘히 거부하면서 李총재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비주류의 반발이 여론의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수습 카드는 비주류 측엔 수용하거나 아니면 당을 떠나라는 양자택일로 받아들여져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주류 측에선 정권 교체를 위해선 李총재의 당 장악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상대적으로 포용력 부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수습안이 나오기까지의 우여곡절 과정에서 李총재가 시대 흐름과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인상을 준 점도 한나라당의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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