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독립운동가 서첩 등 5천점 수집 : 광주 송원여상 심정섭 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때가 되면 사회에 내놓을 생각입니다. 한 개인이 움켜쥐고 있기에는 아까운 게 아주 많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체취가 밴 서첩과 고서(古書) 등을 5천여점 갖고 있는 광주시 송원여상 교사 심정섭(沈禎燮·59·국어)씨.

그의 30평형 연립주택의 거실과 방은 색깔이 바래 누렇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고서들로 가득하다.

또 장롱 속에는 그가 특히 아끼는 독립운동가들의 서첩이 많다. 김구·신익희 선생이 직접 사인한 '백범일지''여행기' 초간본과 조소앙 선생이 자신의 명함에 친필로 메모한 것, 沈씨의 외할아버지인 조경한(1900~93년)임정 국무위원의 당선통지서, 임시입헌 기념식 사진 등이 그것이다.

그는 한말 순국지사인 매천 황현 선생과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만해 한용운, 면암 최익현, 조만식 선생, 을사오적 중 한명인 박제순 외무대신의 친필 서한을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과 구한말 내각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 등의 친필도 갖고 있다.

그는 "처음엔 개인적인 욕심에서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으나 이젠 사료 보전에 대한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기 같은 사람들이 찾아내 잘 간직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이리저리 뒹굴다 망가졌을 게 많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59년 조선대 사대부고에 입학한 뒤부터 헌 책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고 싶었고, 자기 집이 청송 심씨 판사공파 종가인데도 일제에 의해 집이 불타 옛 기록들이 없는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귀한 서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광원이 금맥을 찾고,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처럼 기뻤습니다."

71년 교사가 된 뒤로는 전국의 개미장터·고물상을 돌아다니며 귀중하다 싶으면 박봉을 털고 빚까지 내 사들였다. 집에 돈을 갖다주지 않자 부인이 파출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사상적으로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3백여권을 불태워버린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한다. 일제 및 해방 직후 나온 사회주의 등에 관한 희귀 서적들을 없앴던 것이다.

그는 "독립기념관이나 대학, 유족과 학자들이 넘겨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때가 아니라서 거절했다"며 "훗날 잘 보전하고 널리 빛을 보게 할 수 있는 임자를 만나면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이해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