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막내아들 축구선수 만들고파" 탈북… 송환… 재탈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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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에 가면 막내아들은 축구선수가 되게 하고 싶다."

자칫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경우 맞게 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14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한 50대 탈북자가 밝힌 '거사 동기'다.

자신의 이름을 최병섭(52)이라고 밝힌 이 탈북자는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꿈에 탈북과 체포, 강제송환의 곡절을 딛고 또다시 탈북했다고 말했다.

전직 광부로 한때 노동당 당원이기도 했던 최씨는 1997년 부인과 세 자녀를 데리고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뒤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기도 했다고 개인명의의 성명에서 밝혔다.

이날 탈북자 25명의 스페인 대사관 진입을 지원한 일본의 '북한난민구호기금'은 탈북자들의 나이와 직업 등 인적사항과 함께 일부 탈북자들이 자신의 처절한 탈북 사연을 담은 개인 성명을 공개했다. 하지만 많은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친지들의 신변안전을 우려해 실명을 밝히지 않고 가명을 썼다.

탈북자 25명은 6가족 22명과 동행가족 없이 혼자 행동한 3명으로 돼 있다. 연령으로 보면 청소년과 어린이 등 10대가 1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엔 고아 소녀 두명이 포함돼 있다.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최씨의 경우처럼 과거에 북한을 탈출했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강제송환된 경험을 갖고 있는 재탈북자들이라고 '난민기금'은 밝혔다.

특히 광부 이성(43)씨는 두번씩이나 강제송환된 끝에 세번째 탈북에 성공했다. 97년 7월 가족과 함께 탈북했던 이씨는 20일 만에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송환돼 한달 동안 온성교도소에 수감됐다. 석방된 뒤 10월 재탈북했지만 또다시 붙잡혔다. 세번째 탈북은 99년 8월,부인·딸과 함께였다.

그는 "교도소에선 나무에 매달린 채 매를 맞는 등 짐승같은 생활을 했다"며 "두번째 적발됐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먹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중국 공안당국의 수술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에도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에 대비해 몸속에 자살을 위한 극약을 갖고 있다고 '난민기금'측은 밝혔다.

25명의 탈북 전 거주지는 온성·회령·명천·문산·손봉·함흥·삼봉 등 중국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함경북도 출신이 많았다. 직업별로는 광부와 노동자가 많았지만 치과의사·공무원도 포함돼 있었다. 몇몇 탈북자는 한 때 노동당 당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북한을 탈출한 뒤 베이징과 옌지(延吉) 등에 흩어져 조선족 등의 도움을 받고 살다가 지난달 초부터 '난민기금'의 지원으로 대사관 진입을 계획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기금'이 배포한 탈북자들의 영문 성명은 "우리는 지금 엄청난 처벌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면서 "우리는 불행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서울=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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