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에 짓는 임대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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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수도권 11곳 등 전국 18곳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해제 지역에 10만가구의 저소득층용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고 얼마전 발표했다. 전셋값 폭등으로 생활이 더욱 힘들어진 서민들에겐 매우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실상을 면밀히 뜯어보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따져보자.아직 정식으로 그린벨트에서 풀리지 않은 지역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물론 그린벨트 해제를 전제로 택지지구로 지정하는 것이지만 절차상 그린벨트를 먼저 풀고 지구지정을 하는 게 옳은 순서다.얼마나 다급했으면 개발이 불가능한 그린벨트에다 택지지구 지정을 하겠느냐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바늘을 거꾸로 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해제를 위한 광역도시계획이 수립 중이고, 설령 이 작업이 좀 늦어지더라도 택지지구 지정이 가능토록 관련 지침을 마련해 놓아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법령도 아닌 지침으로 그토록 엄격하게 관리해온 그린벨트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고 환경단체들은 항변한다.

기존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다 영세민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발상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이들의 거주지는 생활 근거지와 가까워야 불편이 없다.교통수단도 별로 없는 외곽지대에다 덩그렇게 집만 지어놓는다면 과연 얼마나 입주할지 걱정스럽다. 차라리 중상류층을 위한 고급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여기서 나오는 개발이익으로 도심에다 영세민 주택을 많이 짓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땅이 없으면 재개발·재건축 단지에다 소형 임대주택을 건립토록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기존의 소형주택을 사들여 서민용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린벨트를 풀어 고급주택단지를 짓는다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아 보이지만 환경보전 차원을 강조한다면 마구잡이 개발이 우려되는 영세민 주택단지보다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정부야 절대 마구잡이 개발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지만 현실적으로 이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 주변환경을 고려한 저밀도로 개발할 상황도 못되는 데다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우리의 처지를 감안할 때 주변이 다세대·다가구주택촌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린벨트에 지으려는 국민임대주택 규모도 적정하지 않다.총 건설비의 30%라는 한정된 정부지원으로는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10평형대를 짓기가 어렵고 20평형대가 돼야 겨우 사업성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이렇게 되면 임대료와 관리비가 월 20만원 이상 나와 저소득층 입주가 힘들어지니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공급정책을 현실성 있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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