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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덫에 걸린 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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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이끄는 미국 경제학자들은 단일 통화권을 구성하기엔 유럽 국가들의 경제 구조가 너무 다양하고 각종 제도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로존이 단일 통화정책을 구사하면서 재정정책은 나라마다 독립적으로 펼치기 때문에 실패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면 유럽 전문가들은 단일 통화가 유럽의 영구적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강한 정치적 의지에 기초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비록 유로존이 초기에는 통합에 필요한 경제적 전제조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가입국 간 경제·제도적 차이는 시간이 가면서 극복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토록 한 안정·성장협약(SGP)이 각국의 재정 건전성을 보장해 줄 것으로 믿는다.

유로존이 탄생하고 초기 10여 년간은 유럽의 낙관론자들이 논쟁에서 승리한 것 같았다. 유로존 국가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을 계속했고, 가입국 간 개인 소득과 물가 수준 격차가 줄어들었으며 이자율 차이도 좁혀졌다. 시장에서 사소한 소동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단일 통화 시스템 자체를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유로존에 참여하는 국가들도 계속 늘어났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유로는 두 번째의 주요 통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리스 위기가 유럽 전체를 흔들고 있는 지금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1997년 투기성 자본의 공격으로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은 이번 그리스 위기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 이 계획을 거부했다. 현재 유럽은 IMF와 협력해 유럽통화기금(EMF)을 설립하려 하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현재 유럽의 위기에는 크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유럽은 재정적자가 문제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문제는 민간 부채였다. 또 다른 차이는 환율 제도다. 미국과 IMF 등은 아시아 국가들에 환율 유연성을 증대시킬 것을 권고해 채택됐다. 이 조치는 수출 증대로 이어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유사한 방식을 유로존 위기 국가에 적용하는 건 어떨까. 유로존에 남아선 수출에 의존한 급속한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빈약한 세수(稅收) 기반, 막대한 공무원 보너스, 지나치게 풍부한 연금 혜택 등의 구조적 문제들을 지닌 그리스가 유로존 안에서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스가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어려움에 처한 유로존 내의 다른 국가들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공산이 크다. 지금은 구조자의 편에 선 국가들이 구조를 받는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이토 다카토시 일본 도쿄대 경제학 교수
정리=유철종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