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태세 보고서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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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국방부가 최근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북한·중국 등 7개 국가를 잠재적 핵공격 대상에 포함하고 소형 핵무기를 개발할 것을 권고해 파문이 일고 있다. 미 고위 당국자들은 이 보고서 내용이 정책으로 채택된 것이 아니며 미국의 핵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각국이 이 보고서에 충격을 받는 이유는, 9·11테러 사태 후 미국의 전략개념이 아주 위험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핵무기 운용 기본전략 개념은 상대방이 핵을 사용해 공격하지 않는 한 핵을 동원해 보복하지 않고, 비핵(非核)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지 않으며, 일반 전쟁무기로서 핵의 사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SA)개념에 기초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이런 전략개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으며 실전용 무기로 새로운 소형 핵무기 개발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공격 대상 국가에 북한이 포함돼 있어 한반도에서의 재래식 군사충돌도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 보고서는 상대방 핵무기는 악이고 자신의 핵무기는 선이라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사고를 보여주는 동시에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는 지구 곳곳에 핵 공포를 확산시켜도 된다는 느낌을 준다.

벌써부터 핵공격 위협국가로 지목된 나라들의 반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이 보고서가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명분을 강화하고 중국 등과의 군비경쟁도 다시 촉발해 궁극적으로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동맹국들의 우려도 높다.

NPR에서 제시한 전략적 고려는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갈등을 고조시킬 뿐이다. 미국은 이러한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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