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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환의 마켓뷰] 나랏빚 탓 동유럽이 부도난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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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남유럽 재정위기가 좀체 아물지 않는 가운데 최근 헝가리가 스스로 국가부도(디폴트)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재정위기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해 일부 남유럽 국가에 국한된 것으로 보이던 재정문제가 어느 사이엔가 유로화를 쓰는 16개국 전체의 문제로 번지더니, 이젠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 27개국까지 전염 가능성이 있는 범주에 들고 있다는 게 투자자들의 우려다.

이런 점은 유럽 각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에도 반영됐다. 헝가리를 비롯해 프랑스·벨기에·오스트리아 등 동구권 대출이 많은 나라의 CDS 프리미엄은 이미 전고점을 돌파한 상태다.

투자자들은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 자체보다 재정위기가 불러일으킬 후폭풍을 더 걱정하는 것 같다. 하나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유럽 각국의 긴축이 유럽을 넘어 글로벌 수요를 둔화시켜 더블딥(이중침체)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지난해 3월 한 차례 동유럽 위기가 불거졌을 때 나온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자금 회수와 그로 인한 환율 불안이다.

그러나 이는 동유럽 이슈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 금융 시장에 문제를 일으킨 것은 헝가리 관료의 ‘올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7.5%(목표치는 3.8%)에 달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헝가리는 이미 수년 전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긴축 모드에 들어가 2006년 GDP의 9.3%에 달하던 재정적자가 지난해엔 4%까지 하락했다. 경상수지도 흑자 전환했다. 헝가리 관료의 발언은 최근 정권교체와 관련한 정치적 의도가 일부 녹아든 것일 뿐, 실제 헝가리 경제는 그 정도로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헝가리에 대한 글로벌 경제연구기관의 평가도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올해 헝가리 경제성장률이 -0.3%로 지난해보다 후퇴하겠지만, 2011년 2.6%, 2012년에는 3.5%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의 상황은 지난해 초 동유럽 사태와도 본질이 다르다. 지난해의 상황은 동유럽 사태의 핵심은 동유럽의 경기 침체가 서유럽 민간은행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민간 대 민간’의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남유럽 및 동유럽의 국가 디폴트가 서유럽 민간은행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국가 대 민간’의 문제다.

사안의 크기만 놓고 보면 더 심각해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간과 민간의 문제는 부실이 현실화되고 나서 국가나 국제기구가 개입할 명분이 생기지만, 국가의 문제는 이와 달라 국제기구가 사전에 손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짚자면 동유럽 재정수지 적자와 부채 규모가 남유럽보다 덜하다는 점이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살펴보면 동유럽 10개국의 평균은 -6.1%로 남유럽 6개국 평균(-8.2%)보다 양호하다. GDP 대비 정부 부채 수준도 마찬가지다. 동유럽 10개국 평균이 35%로 남유럽 6개국 평균 81%의 절반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건전하다고 하는 독일과 프랑스도 각각 73.2%, 77.6%인 점을 감안하면 동유럽이 나랏빚 때문에 부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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