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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이렇게 바꿉시다 <4> 깨끗한 거리 말끔한 대중시설 (上) 화장실 : 시설 좋아졌지만 이용 문화는 엉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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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화장실은 각국의 문화 척도다. 화장실은 일상생활의 적나라한 모습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드러낸다. 이 때문에 10개 월드컵 개최도시는 앞다퉈 화장실 시설을 개선하느라 분주하다. 이에 따라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청결 상태나 편의용품 비치 등 보완해야 할 점은 아직도 많다. 특히 소규모 업소의 화장실 모습은 여전하다. 월드컵 예상 관광객 70여만명이 이용하게 될 화장실을 점검했다.

◇시설·관리=지난 6일 오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화장실. 바닥은 물에 흥건히 젖어 있고 쾨쾨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면대 배수관이 낡아서 물을 틀면 바로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휴지나 비누 등 편의용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K여행사 김미진(35)씨는 "매년 1만명이 넘는 일본인 관광객이 수산시장을 찾지만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 인근 빌딩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경기장 인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오후 8시 인천 문학경기장 인근 빌딩의 2층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 밖에는 20대 여성이 남자 이용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등 2개 중 1개는 고장나 어두컴컴한 화장실 바닥에는 휴지가 널려 있고 좌변기 한 곳은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지난 5일 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시설은 잘 갖춰져 있었지만 청소가 안돼 취객이 토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바닥이 지저분해 바짓가랑이가 닿을까 걱정스러웠다.

지저분한 시설도 문제지만 우리의 화장실 이용 문화가 엉망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개장 경기는 교통·경기장 운영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화장실과 매점 운영은 낙제점을 받았다. 전반전이 끝난 뒤 관중들이 화장실로 몰리면서 뒤엉켜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이가 있을 정도였다.

지난해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렸던 컨페드레이션스컵 당시에는 볼 일을 보는 사람보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로 화장실이 북새통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해 숨쉬기가 힘들었다.

문수경기장에는 화장실이 93곳이나 마련돼 있고, 부산경기장도 거의 10m 간격으로 화장실이 있지만 이용객이 질서를 지키지않아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화장실 편의용품이 없어지는 곳도 많다.

전주시 덕진공원 화장실의 경우 남녀 화장실에 매일 화장지 6개를 걸어두지만 2~3개가 사라지곤 한다.다가동 오목대 공원 화장실에서는 난방용 전기 라디에이터가 없어지기도 했다.

골치를 앓던 덕진공원 관리사무소는 화장실 입구에 청소원을 고정 배치해 청소와 '감시'를 함께 하고 있다.

월드컵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가 지난해 11월 외국인 3백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화장실 시설에 만족한다"는 대답은 42.3%에 그쳤다.음식점(74.4%)·관광(67%)·숙박(69.4%) 만족도보다 크게 뒤졌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이정자 공동대표는 "고속도로 휴게소와 철도역 화장실은 많이 좋아졌지만 소규모 음식점, 재래시장, 시외 버스터미널 화장실은 아직도 불편한 점이 많다"며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한줄서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 대책=지난해 서울시는 화장실 1만3천여곳의 시설관리 실태를 점검해 54%인 7천4백여곳에 개선을 권유하는 '옐로카드'를 발급했다.

특히 지하상가 화장실은 조사대상 37곳 가운데 27곳(73%)이 옐로카드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들이 내실 있는 화장실 개선보다는 호화 화장실 건립에만 신경쓴다는 지적도 있다.

부족한 도심 공중화장실을 보완하기 위해 상가 등 건물 화장실을 개방하는 운동이 한창이지만 부산경기장 주변에서 화장실을 개방한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천 문학경기장 주변도 사정은 비슷했다.

서울시는 화장실을 공개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해 닫혀 있던 9백여곳이 문을 열었다.

시는 화장실을 개방한 건물주에게 매달 10만~30만원의 관리비를 지원하고 화장실 안내판을 달아준다.

또 서울시는 지난해 예산 1백억원을 마련해 음식점 화장실 개선자금을 융자(연리 1%)해주고 있다. 그러나 음식점의 85%가 임대여서 건물주가 아닌 음식점 업주의 호응을 얻기 어려워 61건 5억6천여만원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민간 건물 화장실 개선이 부진한 반면 공중화장실은 잘 고쳐지고 있다.

서울시는 공중화장실 5백2곳 중 4백44곳의 개·보수를 마쳤다.또 7일부터 종로·태평로에서 코인식 공중화장실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인천시는 78억원을 들여 월미도 등 인천시내 관광지 공중화장실 1백27곳을 현대식으로 고쳤다. 부산시도 1백66곳을 새단장하고 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사무국장은 "소규모 음식점 화장실의 경우 시설을 뜯어고치지 못하더라도 청결하다면 좋은 인상을 줄 것"이라며 "청결상태, 편의용품 비치 등 기본부터 점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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