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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중앙일보 선정 새뚝이] 1.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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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4년 한국 사회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통과, 수도 이전 문제 등 나라를 뒤흔드는 논란의 폭풍에 휩싸였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열거나 어두운 곳을 밝혀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준 새뚝이들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개척한 소녀, 고난을 뚫고 대학 진학에 성공한 장애우, 금남의 대법원에 여성으로서는 처음 입성한 판사 등이 그 주인공이다. 남들이 다 어렵다고 여기는 일에 과감히 도전한 이들도 포함됐다. 새뚝이는 남사당놀이에서 하나의 놀이판을 끝내고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을 말한다. 낡은 관습을 허무는 신선한 생각과 활동으로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사회부.정책기획부.수도권부

***가난 이긴 독학 … 골든벨 울려 , 문산여고 지관순양

역경을 딛고 꿈을 이뤄 사람들에게 용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 사람. 경기도 파주시 문산여고 3학년 지관순(19)양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양은 지난달 7일 KBS-1TV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퀴즈 50문제를 모두 풀어 혼자 골든벨을 울렸다. 전국 248개 고교에서 100명씩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지만 골든벨 타종자는 43개교에서만 나왔을 정도로 배출이 어렵다. 게다가 지양의 실력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성실한 생활과 꾸준한 독서를 통해 쌓은 것임이 알려지면서 감동은 더욱 커졌다.

사실 방송 당일까지만 해도 지양은 그저 똑똑한 학생으로만 여겨졌을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양의 성공 뒤에 숨은 눈물겨운 성장 과정이 소개되면서 수많은 국민이 감동의 눈물을 훔쳐야 했다.

지양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오리를 기르는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늘 마을 도서관 등에서 빌린 책을 가까이했다.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 문산여중에 들어갔지만 기초가 부족해 성적이 전교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수업에 충실하고 방과 후 학교 독서실에 남아 밤 늦도록 책과 씨름한 끝에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상위권에 올랐다.

고교에 진학한 뒤에는 아침에 친구들이 보충수업을 받는 동안 학교에서 우유를 배달하는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방과 후에는 매일 두 시간씩 초등학생들을 과외 지도하는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 지양은 꿈을 묻는 질문에 "대학에 진학하면 동양사를 전공해 이웃 강대국들의 역사 왜곡에 맞서는 학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수능부정 사이버 수사로 캐내, 서울경찰청 김재규 대장

3억건 가운데 의심스러운 문자 메시지 550여건 추출.

서울경찰청 김재규(42.경정)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28명의 대원과 함께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워 보이는 일을 해냈다.

뚝심과 팀의 단결력이 가져온 결실이었다. 이를 기초로 경찰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 수사에 착수해 374명의 용의자를 입건할 수 있었다.

김 대장은 "나이 어린 학생들이 처벌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한 수험생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직한 학생들이 부정을 저지른 학생들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도록 만든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도 했다.

경찰대 2기 졸업생인 김 대장은 서울경찰청 수사 2계장이던 2000년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사이버 공간에서 범죄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사이버범죄수사대 창설을 주도했다.

사이버 경찰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자신도 인터넷정보검색사.무선인터넷관리사 등의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 4월 사이버범죄수사대장에 임명돼 637만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한 통신회사 직원 등 일당 15명을 검거해 부하 직원 일곱명이 한꺼번에 특진하는 경사를 맞았다.

***대법관 '금녀의 벽' 최초로 깨, 김영란 대법관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법원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던 지난 7월 김영란(48)판사가 대법관에 임명됐다. 한국의 여성 대법관 1호다. 지난해 8월 전효숙(53)판사가 첫 여성 헌법재판관이 된 데 이어 대법원에도 여성이 입성함에 따라 사법부에서 금녀의 벽이 사라졌다.

40대 여성 대법관의 탄생은 서열을 중시하는 법원의 인사 관행에 비춰보면 파격이다. 김 대법관은 사법시험 20회(1978년 합격)로 지난해 9월 임명된 김용담 대법관(사시 11회)과 무려 9년 차이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가 구상하는 사법부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대법관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비상임위원, 서울 종로구 선거관리위원장을 맡는 등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시민단체에 의해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 일부에서 그의 개혁성이 과장됐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여성 대법관의 탄생은 사법부가 사회 각 분야 소수자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까지 부인하지는 못한다.

김 대법관의 남편은 검사 출신으로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55) 변호사다. 강 변호사는 부인이 대법관이 된 뒤 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직을 사퇴하고 현재 주로 공익사건의 변론을 맡고 있다.

***시각장애 딛고 서울법대 입학, 1급장애인 최민석씨

올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1급 시각장애인 최민석(22)씨. 13세 때부터 앞을 전혀 보지 못하지만 한번도 변호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외된 시각장애인들을 법률로 돕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두꺼운 점자 참고서와 녹음기를 끼고 학업에 전념한 그의 고3 수험생활은 역경 그 자체였다. 서울맹학교에서 침.안마 수업을 끝내고 귀가한 뒤 밤 늦도록 공부에 매달렸다. 점자 번역을 위해 참고서를 싸들고 복지관을 돌아다닌 어머니와 퇴근하자마자 돌아와 교과서를 읽어준 아버지의 열성이 합격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합격한 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기본서 외에 점자로 된 참고서가 없어 힘들었다"고 말해 장애인 학습권을 사회 문제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최씨의 입학은 험난한 여정의 시작일 뿐이었다. 점자 교재를 마련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1000쪽이 넘는 법학 관련 서적들을 점자로 옮기는 데 몇개월이나 걸렸다. 2학기 교재를 준비하기 위해 1학기 초부터 점자 번역을 시작했을 정도다. 그는 "2학년이 되면 고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여건을 보면 엄두가 안 난다"며 "법률 서적 출판사들이 서울대에 문서 파일을 양도해 주면 점자 프린트가 원활해질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수도이전 위헌' 결정 끌어내 , 이석연 변호사

이석연(50)변호사는 지난 9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 변호사는 이 특별법이 위헌임을 주장하는 원고 측의 소송 대리인이었다.

그와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은 이 결정이 그의 소신과 뚝심이 가져온 결실이라고 평가한다. 헌재가 위헌 근거로 든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은 관습헌법'이란 개념은 이 변호사가 재판과정에서 거듭 주장한 논리였다. 그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헌법소원 기획에 나서 수도 이전으로 피해를 보게 될 300여명을 청구인단으로 모집하는 등 1인 다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위헌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온 수도 이전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이 사건은 국가적 과제를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 변호사는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 등 '4대 개혁입법'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다. 그는 "국가기관이 헌법에 어긋나는 일을 할 경우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헌법 등대지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10여 전부터 정치에 입문하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나 그는 "전혀 뜻이 없다"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외자유치 앞장 선 노동운동가 ,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 의장

"지역 경제가 살아나면 노동자의 삶도 좋아진다. 노조가 외자 유치 같은 일자리 창출 노력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

이화수(51)한국노총 경기도지역본부 의장은 올 들어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외국 투자 유치 출장에 세차례 동참해 지금까지 17억달러(46건)의 외자를 경기도로 유치하는 데 한몫했다. 이 의장은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한국 근로자들은 해외 기업의 투자를 원하고 있으며, 외국인 회사에서의 노사분규는 최대한 자제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신뢰감을 심어줬다. 그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면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은 물론 첨단 핵심 기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노조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4년간 노동운동을 하며 강성으로 통했던 이 의장은 "그동안 노동운동은 목표를 정하고 투쟁해 관철시키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국민이 그 같은 방식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일자리가 줄어들면 노조의 존립 기반도 위태롭게 된다"며 "일자리를 만들어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책임 있는 노조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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