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5단체장 '대선공약 평가'선언 파장 정치자금 지원과 연계땐 후보들에 상당한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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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장이 4일 "올해 대통령 선거 출마자들의 선거 공약을 평가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경제5단체장 회의 직후 조남홍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특정 후보에게 영향을 줄 의도는 아니며, 대외적으로 공개하지도 않겠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경제5단체의 회원사와 기업들에는 통보돼 사실상 공개되는 데다 평가 자체가 대선 후보들에 상당한 압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재계 일각에선 재계가 정치활동을 공식 선언한 것이 아닌가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평가'발언이 나온 배경=현정부 내내 재계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과 기업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대(對)정부 관계에서 절대적 약자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전경련 등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들은 현정권의 마지막해이자 대선이 있는 올해엔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전경련은 지난달 22일 정기총회에서 올해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재계의 정책이념을 반영할 절호의 해"라고 주장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도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후보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던 터였다. 재계는 그 고리를 정치자금에서 찾을 것으로 보인다.

손길승 SK회장이 지난달 1일 "정치인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요청해 달라"고 불씨를 지핀 이래 전경련과 경영자총협회가 잇따라 총회에서 '불법·부당한 정치자금의 제공 금지'를 의결했다.

대선 후보의 공약 관련 발언은 이런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2000년 4·13 총선 당시에도 경총은 총선 후보의 공약을 평가한 적이 있었다"면서 "이번 발언을 정치 활동의 공식화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당 결성 등 본격적인 정치활동은 아니지만 평가 결과가 정치자금 지원 여부와 연계될 경우 대선 후보들에게 대한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는 최소한 반기업적 공약과 선심성 공약은 사전에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경제5단체는 이른 시일 내에 대선후보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외부에서 전문인력을 영입해 평가할 계획이다. 항목도 경제 분야뿐 아니라 사회·교육·노동·규제개혁 등 모든 부문을 평가하고, 재계의 찬반 입장도 분명히 표명할 생각이다.

경총 조남홍 부회장은 이와 관련, "교육정책과 사회안전망 등 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측은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이 연구 중인 '차기정부의 정책 과제' 결과가 후보들의 평가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영욱 전문위원·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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