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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다시 일깨워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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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은 김정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뢰 부품에 ‘1번’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글자가 발견됐어도 북한이 시인하지 않는 한 중국은 ‘증거 불충분’을 주장했을 것이다. 내부 문제로 복잡한 일본이나, 한반도 문제에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러시아의 움직임이 큰 변수가 되지 못한 것 역시 김정일의 예상과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북아정책연구센터장은 최근 김정일의 속내를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낸 글을 발표했다. “이명박이 증거를 찾는 데 애 많이 썼다. 그러나 그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나는 모든 걸 부인할 테니까. 한국 군부는 보복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반대파들은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의혹을 증폭시킬 것이다. … 나를 당황케 한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나는 오바마가 지난해 우리에게 보여준 확고한 자세에서 벗어나 내가 줄곧 원했던 북·미 양자대화를 간청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천안함이 미국과 남한 간에 분열을 야기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바마는 예상보다 기골이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천안함 사건에서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동맹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베이징에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특히 이 대통령 담화 직후 나온 백악관의 심야 성명은 인상 깊었다. 나는 “북한의 추가 공격을 차단하는 데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라고 미군 사령관들에게 지시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 북한의 도발 야욕을 억지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믿는다. 미국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인 입법부도 민주·공화를 가릴 것 없이 앞다퉈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을 바라보는 각 나라들의 속내를 다시 한번 드러내 준 값비싼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사건은 곧 월드컵 열기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소중함은 한 번쯤 기억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달 들어 워싱턴에선 6·25 60주년 기념행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6·25전쟁 다큐멘터리 시연회에서 만난 미 참전용사들은 오늘날 남한과 북한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과 미국이 자유의 가치를 위해 여전히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다행스러우면서도 서글픈 일이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