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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파병연장안 놓고 정치 잔꾀 부릴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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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의 파병 기간을 1년 연장하는 동의안이 정기국회 마지막날까지 처리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행태는 잔머리 굴리기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익은 간 곳 없고 정략적 계산만 가득했다. 과연 이런 정치권에 나라를 맡길 수 있는지 우려된다.

1차적 책임은 열린우리당에 있다. 여당 지도부가 "한나라당이 표결 처리 약속을 어겼다"고 책임을 떠넘긴 것은 낯 두꺼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협조 요청을 하지도 않았고, 여당 의원 60여명이 파병에 반대했는데도 청와대나 여당 지도부가 설득 노력을 기울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까지 방문했는데 파병 연장엔 여당이 앞장서 반대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동안 여권 관계자들은 "파병 연장 동의안은 야당이 통과시켜 줄 것"이라며 느긋한 자세였다. 동의안 처리는 야당에 맡겨놓고 당내 파병 반대파의 목소리를 방치해 이미지 홍보를 하겠다는 속보이는 계산법이다.

우리의 젊은이를 험지에 보내는 데 흔쾌해 할 국민은 별로 없다. 다만 국익을 고려해 심사숙고 끝에 파병에 찬성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 운영의 책임을 진 여당이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여서야 얄팍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지난해 파병안을 처리할 때도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더니 연장안 처리에도 끝끝내 이중적 자세를 보이는 건 정말이지 실망스럽다.

한나라당의 태도도 문제다. "안보와 경제만은 반드시 챙기겠다"고 큰소리치더니 마지막 순간에 발을 뺐다. "여당이 소극적인데 야당이 총대를 멜 이유가 없다"는 정략적 계산이 작동한 결과다. 더구나 재계에서 그렇게 반대하던 공정거래법은 국회 통과에 협조했다. 이런 한나라당이 현 정권의 안보와 경제정책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파병 연장안은 올해 말까지 통과돼야 차질이 없다. 청와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당내 정지작업과 야당 설득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야당도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