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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산책] '영원한 캡틴' 홍명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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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사람들은 홍명보가 좀처럼 웃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긴장된 경기 중에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그라운드를 떠난 ‘영원한 캡틴’은 "앞으로는 많이 웃고 살겠다"고 했다. 성남=김성룡 기자

지난 주말 오후. 홍명보는 약속시간을 10분쯤 넘겨 인터뷰 장소인 분당신도시의 홍명보장학회 사무실에 나타났다. 귀국한 지 20일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바쁘다. "1년간 만날 사람을 한 달간 몰아서 만나니 그렇다"는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영원한 캡틴' 홍명보(35)는 지난달 축구화를 벗었다. 대표팀 은퇴가 아닌, 25년 축구인생을 접는'진짜'은퇴다. 1980년 서울 광장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한 축구를 대한민국 선수 중 가장 영예롭게 마쳤다.

2년 전 한.일 월드컵을 끝낸 직후 그는 미국 프로축구(MLS)에 도전장을 던졌다. 축구와 영어를 병행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성과를 묻자 그는"영어는 좀 늘었다. 듣는 건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은데, 말은 좀 더디다"고 했다.

그와 2002년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시상식 때 동행했었다. 당시 그의 소감은 "생큐" 한마디였다. 그 장면을 들추자 "지금이라면 '이 상은 내가 아닌 한국 국민에게 주는 것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하겠다"며 웃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홍명보는 늘 팀의 중심이었다. 그것을'카리스마'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 생활 초기, 그는'카리스마'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 "미국 동료에게 나는 그냥 친구였다. 나를 중심으로 모이던 한국.일본과 달랐다. 처음엔 무척 섭섭했다. 그런데 점점 짐을 던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그에게 '카리스마'는 명예인 동시에 짐이었던 셈이다.

홍명보는"정신적으로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본과는 다른 미국 구단의 운영모습에서 많이 느꼈다. 미국에서는 경기를 위해 6~7시간 비행기를 타고가 낯선 도시에 내리면 숙소를 찾아가고 식사를 해결하는 게 선수의 몫이다. 예전 포항 스틸러스 시절 1시간 비행기 타고 가면 차량.숙소.식당이 다 준비돼 있어도 고마운지 몰랐던 것이 부끄럽다."

"은퇴했으니 좋은 아빠가 될 차례"라고 하자 그는"지금까지도 좋은 아빠였던 것 같다"는 예상밖의 대답을 했다. 그는 "오랜 외국생활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 못한 기간은 2002년뿐"이라고 했다. 그는 청소나 아이 목욕 등은 직접 한다며 은근히 '좋은 남편'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는 아들만 둘이다. 성민(7).정민(5) 형제는 그가 개설한 보(BO)축구교실에서 공을 찬다. 그는 "아직은 둘 다 재미로 찬다. 둘째가 공을 더 좋아하고 흥미도 보인다. 하지만 선수가 되는 건 본인 희망과 재능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에게는 늘 '미래의 축구행정가'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는"축구선수 출신으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축구다.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물론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쉽다. 나는 지금 쉬운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을 놓고 고민 중이다. 2~3년간 더 생각한 뒤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술.건강.돈 등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전에는 소주 한 병 정도 마셨는데,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주량이 줄었다. 은퇴 발표 직후 제일 먼저 피트니스센터부터 등록했다. 그런데 귀국해서 며칠 쉬었더니 4㎏쯤 불었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는 중요한 게 많다. 돈에 집착했다면 장학재단이나 자선경기 같은 건 못했다. 아이들 넉넉히 키울 만큼은 벌었다"고 했다.

그는"앞으로 내 직함은 '홍명보장학회 이사장'이다. 그럴 듯하지 않으냐"며 웃었다. 그가 2002년 설립한 홍명보장학회는 26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제2회 소아암 어린이 돕기 자선축구대회를 연다.

성남=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홍명보는

▶출생=1969년 2월 12일 서울

▶가족=부인 조수미(97년 결혼), 2남 성민.정민

▶별명=흥부.홍금보.멍게

▶체격=1m83㎝.72㎏(최근 좀 불었음)

▶학교=광장초-광희중-동북고-고려대

▶소속팀=포항(92년 입단)-벨마레 히라스카(97년)-가시와 레이솔(99년)-포항(2002년)-LA 갤럭시(2003년)

▶기록=K-리그 156경기.34골/J-리그 114경기.7골/대표팀(A매치) 135경기.9골

▶주요 경력=90년 국가대표 데뷔/92년 K-리그 MVP/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월드컵 브론즈볼 수상/월드컵 4회 출전(90.94.98.2002년)/세계올스타전 4회 출전/FIFA선수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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