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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이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들어 북한 내부의 이상동향을 둘러싼 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북한의 실제 변화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확인 사안으로 북한을 평가하는 것은 객관적인 북한 이해를 어렵게 한다. 반면 북한체제의 변화가 없다는 경직된 믿음도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변화 기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확인된 당 구조조정과 형법 개정은 북한 내부에 의미 있는, 그러나 안정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김정일 체제 출범 후 처음으로 단행된 당 구조조정은 북한 정치체제 변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다. 그리고 그 방향은 선군정치의 강화와 내각의 역할 증대로 요약할 수 있다. '선군정치'는 최근 단순한 통치스타일이 아니라 체제 전반을 규율하는 '선군사상'으로 격상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단행된 당의 권력구조 개편에서 군을 앞세우는 선군정치는 본격적인 정치체제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을 지도장악했던 당 군사부의 해체는 선군정치의 실질적 내용을 당 구조에 반영한 결과이며 이는 인민무력부의 국방위원회 소속과 국방위원회의 실질적 권한 강화와 맞물려 북한 정치체제의 선군정치화를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정책검열부와 농업정책검열부의 해체는 최근 가속화하고 있는 내각의 역할 강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미 1998년 헌법 개정 이후 북한은 이른바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표방하면서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내각의 권한 강화를 추진해 왔다. 지난 8월 내각회의에서 신의주 특구사업의 공식 중단을 결정했던 것도 최근 박봉주 실세총리의 역할과 함께 내각이 명실상부한 '경제 사령부'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종합적 통제장치였던 당 부서가 해체됨으로써 경제사업 분야에서 내각의 자율성은 그 어느 때보다 증대됐다. 이는 당 사업의 고질적 문제였던 '경제의 정치화'를 막고 내각의 책임하에 경제적 효율성과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개혁 의지가 전제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경제난으로 인한 정치적 책임을 내각으로 돌림으로써 당을 맡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담을 완화시키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의 당 구조조정은 정치와 사상을 당이 맡되 경제와 군사는 내각과 국방위원회가 분담함으로써 선군시대에 맞는 당.정.군 관계의 일정한 역할 분담을 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단행된 형법 개정에서도 내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 명문화와 개인의 재산권 보호 강화,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과 탈북자 처벌 완화 등은 이미 확산하고 있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수용한 적극적 대응조치다. 2002년 7.1 경제개혁 조치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실리 우선의 사회분위기를 억지로 막기보다는 오히려 용인하고 외부의 인권 공세를 감안해 전향적 내용을 담은 것은 북한이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갈 것임을 예상케 한다. 반면 반국가 범죄에 대한 처벌을 일부 강화한 것이나 개방화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처벌하기 위해 새로운 법조항을 추가한 것은 변화의 추세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해이 현상으로 발전하는 것은 적극 막겠다는 조치로 해석된다. 아울러 군 기강 조항을 강화해 국방 관련 일탈행위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선군정치 강조와 함께 군의 역할 증대에 따른 형법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당 구조조정과 형법 개정은 북한 내부로부터 일정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면서 동시에 위로부터 체제 유지를 위한 적극적 대응노력이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개혁.개방의 불가피성과 이에 따른 내적 변화를 일정하게 용인하면서도 이를 적절히 관리하기 위한 정치적.법적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변화와 지속의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한불변론과 북한붕괴론 모두가 북한의 실제적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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