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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솜사탕'은 내 작품 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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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표절인가, 창작인가.

때 아닌 표절 문제가 방송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역 드라마 작가로는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김수현(60·사진)씨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법적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 시청률 1~2위를 다투고 있는 MBC 인기 주말극 '여우와 솜사탕'이 자신의 1992년 히트작 '사랑이 뭐길래'를 표절했다며 지난 23일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여우와 솜사탕'은 3월 말 종영 예정이다.

◇"모든 것이 비슷하다"=김씨는 변호사를 통해 낸 신청서에서 50여 가지의 비교 항목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는 ▶주제와 소재가 동일하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유사하며 ▶대사 및 세트가 비슷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표 참조>

예를 들어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정도로 극단적인 보수주의자 아버지, 뒤에서만 하소연하고 그 앞에선 기를 못 펴는 어머니. 그러나 가부장적인 남성상에 숨어 있는 근검·절약 정신. 여기에 사돈 관계로 발전할 양가의 어머니가 여고 동창생이라는 점도 닮았다는 것이다. 또 봉건적 가정에서 자란 아들과 자유분방하게 자란 딸이 엄마 세대의 반목을 딛고 결혼하는 점도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남녀 주인공의 가옥 구조는 물론 대사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씨측은 신청서에서 "아예 처음부터 '사랑이 뭐길래'의 대본을 놓고 주인공의 직업과 나이, 조연들의 배역만 조금씩 바꿔 표절 의혹을 벗고자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표절 제소는 어불성설"주장=MBC측은 일부 유사한 점이 있을 지 몰라도 표절이란 어림도 없다는 입장이다. 연출을 맡은 정인 PD는 "홈드라마의 성격상 기본적으로 설정이 겹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인물 성격과 스토리 전개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고문 변호사인 최정환 변호사도 "저작권 침해란 단순히 인물 설정이 비슷하다고 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법적 판단 놓고 감정싸움 우려도=공교롭게도 김수현씨는 오는 3월 2일부터 '여우와 솜사탕'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될 KBS 2TV의 새 주말 연속극 '내 사랑 누굴까'를 집필한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김씨는 25일 "내가 변호사와 법적 문제를 상의한 것은 '여우와 솜사탕'이 방영된 직후로, 새 드라마 집필과는 상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은 변호사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본안 소송을 내는 것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소설의 원작자가 드라마 표절을 이유로 소송을 낸 적은 간혹 있었지만, 방송 작가가 특정 드라마를 겨냥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현재로선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태. 그래서 곧 있을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상복 기자

김수현씨가 문제 제기한

주요 항목들

1.주제의 일치:가부장적인 사조와 남녀평등 사조의 결합(결혼이 매개)

2.인물 구도의 동일:부모가 주연 못지 않은 역할 등

3.부자지간에도 철저한 계산,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사랑

4.남녀 주인공의 성격 유사

5.조연급들의 역할 일치:어머니들의 여고 시절 친구들, 남자 주인공의 선배

6.대사의 부분 일치

7.세트의 유사:남자 주인공의 한옥 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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