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기 올리기 악역 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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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민의 정부' 임기가 이제 꼭 1년 남았다. 지난 1·29 개각으로 새로 짜여진 경제팀은 올해 경제운용계획에서 "정치일정에 흔들리지 않고 정도(正道)와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펴겠다"고 강조했다. 정치바람이 드세지고 이해충돌은 더욱 노골화할 앞으로 1년간 어떻게 산적한 현안을 마무리하고 성장 잠재력을 키울 것인지 경제장관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

-열달만에 산자부장관으로 복귀했는데 요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경제주체들이 스스로를 잘 모른다. 나라 밖에서는 성장 잠재력과 활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거시지표도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사기가 떨어져 있고 두고 보자는 분위기다."

-나라 안팎 상황이 불투명해서 그런 것 아닌가. 특히 과거 정치의 계절에 경제정책이 휘둘렸던 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국민에게 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그 바탕 위에서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마무리 경제팀이라고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내가 악역을 맡겠다.지금 주저앉아선 안된다."

-억지로 등을 떠밀어 되겠는가. 기업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부양을 꾀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 사행적인 소비행태 등 일부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수출과 투자를 회복시켜 기업 중심으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출자총액제한 등 필요한 투자를 못하게 하는 규제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하이닉스 처리 문제다. 장관으로 오기 전 구조조정특위 위원장도 맡았는데 어떤 방안이 있는가.

"개당 1달러도 안되던 D램 가격이 4달러대로 회복됐다. D램을 많이 쓰는 사무실용 PC를 바꿀 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하반기부터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고, 내년에는 가격도 더 오를 것이다. 반도체 가격이 현 수준 이상을 유지하면 하이닉스는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마이크론과 40억달러에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부대조건등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과연 팔아야 하느냐는 반론이 만만찮다.

"협상을 해봐야겠지만 만약 깨질 경우 하이닉스의 경영을 우선 정상화시킨 뒤 주인을 찾아주는 방안도(채권단이)검토 중이다. 협상이 결렬된다고 하이닉스가 주저앉진 않을 것이다. 반도체 시장 전망과 금융시장의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채권단에 냈다."

-벤처기업이 관련된 게이트가 잇따라 터져 시끄럽다. 이와 관련, 정부의 벤처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벤처기업이 기술개발에서 비껴나 머니게임과 같은 이상한 쪽으로 가도록 두어선 안된다. 이제 벤처 육성은 정부 주도보다 시장 중심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심사하는 벤처인증 제도를 개선하겠다. 종합 대책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오는 28일 벤처활성화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발표하겠다."

-미국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맞춰 과실을 따먹어야 하는데 수출이 여전히 좋지 않다.

"설 연휴에 물류터미널에 가보니 빈 컨테이너가 많았다. 수출이 여전히 부진하다는 의미다. 그래도 원자재 반입은 올들어 2~3% 늘었다. 이는 3~4월께 수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근로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제조업의 활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성장의 엔진은 인력이다.최근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인력의 수요 부처로서 청년실업 해소 방안을 찾고 있다. 대기업들이 기술대학을 만들어 필요한 인력을 자체 양성·흡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시화공단에 있는 산업기술대학이 좋은 모델이다. 공단 기업들이 학교를 후원하며, 학생들이 산업현장에서 여섯달 동안 실습한다. 올 졸업생 2백여명이 이미 지난해 말 전원 취업했다."

사진=김형수 기자

정리=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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