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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길을 가던 아이가 허리를 굽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돌이 사라진 자리는 젖고

돌 없이 어두워졌다

아이는 한 손으로 돌을 허공으로

던졌다 받았다를 몇 번

반복했다 그때마다 날개를

몸속에 넣은 돌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허공은 돌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스스로 지웠다

아이의 손에 멈춘 돌은

잠시 혼자 빛났다

아이가 몇 걸음 가다

돌을 길가에 버렸다

돌은 길가의 망초 옆에

발을 몸속에 넣고

멈추어 섰다.

-오규원(1941~ ) '아이와 망초'

길을 가다가 허리를 굽혀 돌 하나 집어들고 놀다가 길가에 버린 아이는 우리도 보았다. 그러나 돌이 날개를 몸 속에 넣고 날아오르거나 잠시 혼자 빛나거나 발을 몸 속에 넣고 멈추어 서는 것은 시인만 보았다. 그런데 돌이 사라진 자리가 젖고 어두워지고, 돌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허공이 스스로 지우는 장면을 혼자 목격한 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망초를 슬그머니 제목 속에 옮겨 심어놓았다.

김화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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