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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할리우드 그녀들이 탐낸 이유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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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1960년대 ‘비브 네크리스’. 에메랄드와 자수정·터키석·다이아몬드의 하모니가 인상적이다.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목걸이를 보았을 땐 심장이 느리게 뛰면서 침이 꼴깍 넘어가고 숙연해졌다. 한데 빨강·파랑·보라 등 색색의 원색 보석들로 만든 장신구 앞에선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군침이 확 돌았다. 엔돌핀이 마구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미당 서정주가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라고 노래한 ‘화사(禾븝)’처럼, 강렬한 원시적 생명력이 전해져 왔다. 보석이 사람의 신체리듬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로비(15일까지)에 가면 탐스러운 원색의 보석 장신구들을 맘껏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하이주얼리 브랜드 ‘불가리’가 브랜드 탄생 125주년을 기념해 열고 있는 회고전에서다. 지난 4월, 프랑스 브랜드 샤넬이 열었던 ‘오트쿠튀르 주얼리전’을 보았다면, 필히 이 전시를 보라고 ‘강추’하고 싶다. 너무 섬세하고 완벽해 깍쟁이 같은 프랑스 주얼리와 달리, 원초적이고 풍성하며 투박해 보이는 이탈리안 주얼리는 또 다른 감성과 영감을 줄 것이므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장한 에메랄드 팔찌. 리차드 버튼이 선물한 것이다. 1963년.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불가리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었던 ‘영원과 역사 사이: 1884-2009’의 세계 순회전 중 하나다. 당시엔 불가리 아카이브(기록보관소) 소유의 빈티지 작품 400여 점과 컬렉터들에게서 대여한 수집품 등 600여 점이 전시됐지만, 서울엔 그 중 선별된 60여 점만 건너왔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불가리 제공

리즈 테일러가 사랑한 보석

사파이어와 루비로 화려한 꽃과 꽃병을 형상화했다. 1968년.

로마전에선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장한 20여 점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 테일러는 “나만의 부스를 설치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보석 매니어였던 테일러는 1962년 로마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촬영하며 이 브랜드를 알게 됐다. 함께 공연하던 리처드 버튼은 “날씨가 좋으니까” “화요일이니까” 등 갖은 이유를 붙여 그에게 불가리 보석을 선물했다. ‘테일러-버튼’이라고 불린 보석들이다. 각기 배우자가 있던 두 스타는 이를 매개로 불 같은 사랑에 빠졌다. 버튼은 “리즈(엘리자베스의 약칭)가 아는 이탈리아어라곤 ‘불가리’ 밖에 없다” “나는 리즈에게 맥주를 가르쳐줬고, 그녀는 내게 불가리를 알게 해줬다”는 말을 남겼다.

‘7개의 신비’란 이름이 붙은 에메랄드를 다이아몬드가 뒷받침한다. 200억원대. 1961년.

리즈가 사랑했던 불가리는 그의 화려한 외모처럼 알(캐럿)이 크고 디자인과 색채가 대담하다. 다이아몬드보다 유색 보석이 주인공이다. ‘예쁘다’란 말보단 ‘멋있다’ ‘탐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이다. 샤넬이나 쇼메, 부쉐론, 반 클리프 앤 아펠, 까르띠에 같은 프랑스 하이주얼리들이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레이스처럼 섬세하게 세공된 보석을 내놓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불가리 코리아 홍보담당 배지인 부장은 “로마가 남성적이고 건축적, 직선적, 고전적이라면, 파리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부드럽고 현대적이다. 민족 기질이나 도시 분위기가 보석에도 반영됐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의 최대 화제작인 ‘7개의 신비’ 목걸이. 모서리를 둥글린 쿠션 모양의 거대한 에메랄드 7개(총 118.46캐럿)를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 224개가 보조하는 모양새다. 에메랄드가 내뿜는 선명한 초록색이 압도적이다. 가격도 200억원대란다. 125주년 기념 도록의 표지로 선정된 ‘비브 네크리스(위 사진·턱받이처럼 목에 달라붙는 목걸이)’에서도 주연은 에메랄드와 자수정, 심지어 보석 축에도 끼지 못하던 터키석이다. 다이아몬드는 역시 조연이다. 당대의 컬렉터이자 거대 화장품 기업 ‘레블론’ 창업주의 아내인 린 레브슨 여사가 소장했던 제품이다.

빈티지 작품 되사 전통 보존

불가리의 상징이 된 ‘카보숑컷 실론 사파이어’ 네 개(43캐럿)로 만든 귀고리. 1955년.

불가리는 1884년 그리스 출신 은세공 장인이었던 이탈리아 이주민 소티리오 불가리의 주얼리숍에서 시작됐다. 1950년대까지는 업계를 지배하던 프렌치 스타일 보석을 만들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불가리 스타일’에 집중했다. 눈동자처럼 둥글고 볼록하게 깎아 볼륨감을 극대화한 ‘카보숑 컷’, 짙은 파란색 사파이어에 비해 홀대받던 투명한 파란색의 ‘실론 사파이어’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리즈 외에도 잉글리드 버그만, 소피아 로렌, 지나 롤로브리짓다, 안나 마냐니 등 선이 굵은 여배우들과 유럽 왕족들이 고객이 됐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이 업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크리스티 경매 등 주요 옥션을 통해 되사들인 빈티지 컬렉션이다. 불가리 스타일이 완성되던 1960년대 제품과 초창기의 은 제품, 1990년대 한정판 제품까지 망라한 400여 점을 모아 아카이브를 꾸몄다.

불가리의 상징인 뱀을 형상화한 시계 겸용 팔찌. 빨간색과 초록색 에나멜로 비늘을 표현하고, 두 눈에 다이아몬드를 박았다. 시계는 ‘바쉐론 콘스탄틴’ 작품. 1965년.

서울은 호주 시드니에 이어 두 번째로 미니전을 유치했다. 지난해 세계 불가리 매출순위 6위를 차지한 주요시장이기 때문이다. 불가리코리아는 공식 오프닝 하루 전날인 1일, VIP 수십여 명을 신라호텔 에메랄드관으로 초청해 2시간 동안 디너쇼를 벌였다. 이들은 하루 먼저 전시를 구경하고, 모델들이 착용하고 선보인 수십억원대 ‘신상’ 하이주얼리를 감상했다. 참석자 상당수가 매장에서의 개별 상담을 신청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TIP 유색 보석은 열과 화학 물질에 약해요

보석은 여러 종의 원소가 모인 광물이다. 물리적·화학적인 자극에 노출되면 변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끓인 물이나 벤젠에 닿아도 비교적 안전하지만, 다른 유색 보석들은 견디지 못한다. 화학성분이 거의 동일한 루비와 사파이어는 중성세제를 푼 따뜻한 물에서 솔로 세척한다. 초음파를 이용한 전문 관리도 권장된다. 수정의 관리법도 유사하다. 에메랄드는 중성세제를 푼 찬물로 세척한다. 터키석은 진주나 상아만큼 약하므로, 천으로 살살 닦아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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