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제2부 薔薇戰爭 제1장 序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물론 적산원에서는 스님은 물론 전 신도들이 함께 절 살림에 힘을 보태는 풍속이 있었다. 엔닌도 그의 일기에서 이런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9월 28일.
적산원에서 무청과 무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원의 상주들도 모두 다 나가 잎을 골랐다. 만일 곳간에 땔감이 없을 때에는 원 중의 스님들은 물론 늙은이·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땔감을 구하러 나간다."
적산원에서의 중요한 법회는 초청된 화상의 강설을 듣고, 참회하는 예불의식이었는데 낭혜화상은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기 위해서 시방불에 예배하기보다는 무너진 다리를 복원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직접 나서 무거운 돌을 나르는 한편 신도들에게는 다만 이렇게 말을 할뿐이었다.
"몸은 종처럼 부리되 마음만은 임금처럼 받드시오."
하루에 한끼만 먹어 바짝 마른 체구였지만 눈은 섬광 같은 빛을 뿜고 있어 형형하였다. 비록 나이는 장보고 보다 열 살 넘어 아래였지만 그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령한 기운이 충만하였다.
바로 그 무렵 정년이가 적산법화원으로 장보고를 찾아온 것이었다. 헤어진 지 3, 4년만의 일이었다. 장보고는 이미 무령군에서 제대하여 장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제대한 지 3, 4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보고는 이미 신라인들을 조직하여 큰 선단을 거느린 대상인으로 성장하여 있었고, 정년은 아직도 군문에 몸을 담고 있던 군인이었다.
함께 장사를 하자 권유하여도 정년은 장사는 천민들이나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는 무인의 길이 맞는다 하여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우르릉 쾅. 다시 번개가 번득이더니 천고(天鼓)가 울었다.
장보고는 품속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연이어 번득이는 번개 속에서 장보고는 그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작은 불상이었다.
선정인(禪定印)의 수인을 하고 앉아있는 신라불상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낭혜화상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 불상은 건네받을 때부터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목이 부러져 몸체와 불두(佛頭)가 따로 떨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보고는 떨어져나간 불두를 헤어질 무렵 정년에게 내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어라."
장보고가 불상의 머리부분을 내주자 정년은 이를 받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형님."
"이것은 불상의 머리다."
장보고가 불상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하오면 형님, 아우가 이 불두를 가져가면 이 불상은 두 동강이가 되어 온전한 몸이 아니라 불구가 아니겠나이까."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아우인 네가 내 곁을 떠나 군인의 길을 가겠다니, 이 형도 온전한 몸이 아닌 불구의 몸인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내게 돌아오너라. 돌아와서 함께 힘을 합치자꾸나. 네가 없는 나는 머리가 없는 불상과 마찬가지니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년은 형 장보고가 떨어져나간 불상의 머리를 자신에게 건네주는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부절(符節).
예부터 주로 사신들의 신표(信標)로 사용되었던 이 부절은 때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형제지간, 혹은 부부간에 서로 부신(符信)으로도 사용되었던 물건이었다. 먼 훗날 만나서 서로 지니고 있던 신표를 맞춰 하나의 완형을 이룸으로써 서로의 신의를 확인할 수 있는 이 부절은 주로 돌이나 대나무쪽을 잘라서 만들었으나 장보고나 정년의 경우처럼 사사로운 물건을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선선히 불상의 머리를 품속에 간직하면서 아우 정년은 이렇게 맹세하며 말하였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우는 이 불두를 신표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겠나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