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집 인구 7000만 명, 세계 미술시장 G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황팅젠(黃庭堅)이 쓴 서예작품 ‘지주명(砥柱銘)’. 사진 폴리옥션 제공 2 장다첸(張大千) 채색화 ‘아이헌후(愛痕湖)’ 경매 현장. 사진 자더 제공 3 장다첸의 채색화 ‘아이헌후’. 사진 자더 제공

2010년 봄 중국 미술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1억, 10억도 아니고 90억, 195억, 770억원짜리 미술품들이 팍팍 팔려나가는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베이징과 홍콩에서는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거대한 밤 불꽃놀이를 방불케 하는 미술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2010년 봄의 중국 미술시장은 경매 신기록이 쏟아지고 3회째인 홍콩 아트페어 역시 초호황을 맞아 아시아의 대표 아트페어인 한국 KIAF의 위상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5월 17일 베이징의 자더 경매에서는 장다첸(張大千·1899~1983)의 채색화 ‘아이헌후(愛痕湖)’가 1억80만 위안(약 175억원)에 낙찰돼 아시아 최고가 기록을 수립했다. 한 주 후 열린 홍콩 아트페어와 크리스티 경매, 소더비 프리뷰,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 경매회사의 경매를 찾은 각국 미술 관계자들의 화제는 온통 장다첸 얘기뿐이었다.

2006년부터 최고가 기록 경신 릴레이
서양 미술시장의 독주와 오랜 영향 하에서 피카소, 모네,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를 찾던 아시아인들에게 장다첸의 기록은 ‘동양화, 175억원’이라는 단어를 새로 외우게 만들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천이페이(陣逸飛·1956~2005)의 유화 작품 ‘현악 4중주’가 6100만 홍콩 달러(약 95억원)에 낙찰되면서 정판즈(曾梵志·46)에 이어 홍콩 크리스티 경매 사상 두 번째로 ‘1000만 달러 작가’에 등극했다. EXPO로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하이의 대표 미술관 상하이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혜택을 톡톡히 봤다.


크리스티는 설립 20주년인 2006년에 쉬베이훙(徐悲鴻)의 유화 작품 ‘노예와 사자’가 695만 달러(약 64억원)에 낙찰되면서 ‘500만 달러 작가’를 배출했다. 이어 미술시장 절정기인 2008년 봄 경매에서는 정판즈의 대작 ‘가면 시리즈 1996’을 970만3490달러(약 100억원)에 낙찰시키면서 현대미술 경매의 아시아 센터라는 칭호를 얻었고 정판즈라는 생존 작가를 ‘1000만 달러의 사나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 미술시장의 기지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베이징 한편에서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또 한 번의 기적을 준비하던 경매회사 폴리 옥션(Poly Auction·保利)은 2010년 설립 5주년을 맞아 야심작을 발굴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 관련 사업을 하는 모기업이 중국 10대 기업을 목표로 삼고 야심 찬 행보를 하고 있는 폴리는 황팅젠(<9EC4>庭堅·1045~1105)·왕멍(王蒙·1308~85)·치엔웨이청(錢維城·1720~72) 등 3대 작가의 고미술품 걸작을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기록 경신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들 작품은 모두 1억 위안 이상으로 낙찰됐다.

황팅젠의 지주명(砥柱銘) 770억원 낙찰,
아시아 미술품 최고가
야심 찬 폴리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6월 3일 오후 11시. 2828번 작품 황틴젠의 ‘지주명(砥柱銘)’ 경매가 시작됐다. 시작가는 8000만 위안, 1000만 위안씩 가격이 올라갔다. 9000만 위안을 넘자 경매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1억 위안을 넘자 시작할 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완전히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70회의 응찰을 넘으며 오후 11시12분 황팅젠의 작품이 인민폐 3억9000만 위안(약 701억원)에 낙찰돼 아시아 최고가를 경신했다. 수수료를 합친 최종가격은 4억3680만 위안(약 770억원)이었다.

역시 역사는 밤에 이뤄졌다. 자더의 신기록도 폴리의 신기록도 모두 오후 11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수립됐다. 경제몰입형 국가인 중국은 GDP 세계 3위, 외환보유액 1위, 금 보유량 5위, 경제성장률 연평균 10%가 넘는 경제 강국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증가하는 예술촌에서 작업되는 신작과 계속 발굴되는 작품으로 중국 미술시장은 이미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중국 정부 발표에 의하면 각종 예술품을 수집하는 인구가 7000만 명에 달한다. 문화부가 ‘예술시장’이라는 잡지를 직접 발행하고, 미술관을 1만 개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앞으로도 중국 미술시장의 확대 가능성은 무한하다.

한국과 일본의 미술시장이 2008~2009년 2년 동안 계속 28~41% 하락하는 동안 중국은 2008년 한 해 18% 떨어졌다가 2009년 곧바로 16% 성장으로 돌아섰다.

중국 경매시장을 보면 정말 놀랍다. 응찰을 하려면 일반 경매의 경우 몇백만원에서 2000만~3000만원의 보증금을 맡겨야 하고, 고가의 작품만 엄선해 실시하는 야간 경매는 억원대의 보증금을 맡겨야 하지만 항상 자리가 만석이다.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온 딜러들이 가격을 따지지 않고 원하는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신흥부자나 기업을 대신해 수십 번씩 응찰번호판을 든다. 전화응찰자도 많지만 현장에서 즐기고 돈 자랑도 해가며 미술품을 구입하는 중국인이 참으로 많다.

중국은 베이징·상하이·홍콩에서 다섯 개의 굵직한 아트페어를 연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120개의 경매회사가 거의 매일 경매를 치르고 있다. 또한 급부상하며 작품당 10억대를 호가하는 가격을 형성한 20~30명의 현대미술 작가군은 국내 전시 단계를 넘어 해외 초대전, 미술관 전시를 기획하며 세계 미술시장에서 견인력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크리스티·소더비·본햄스 등 세계 주요 회사의 각국 경매에서도 정판즈·장샤오강·류예 등 중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

중국 시장의 50분의 1…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이웃 나라의 축제를 보면서도 여전히 왜소하고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 우리 미술시장을 걱정하게 된다. 홍콩에서 열리는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를 보면 늘 아슬아슬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이 야간 경매에 계속 출품되고는 있지만 얼마에 팔리느냐보다 솔직히 이번에 팔릴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국내 미술시장이 항상 우리 대표작가들의 가격을 지탱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늦게 홍콩에 진출한 일본은 대표 작가 5~6명이 큰 변동 없이 대표 역할을 하고 있고, 화랑들도 새로운 작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대표 작가 육성과 육성 방법에 대한 협의다. 작고 작가 중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인 백남준·박수근·이중섭· 김환기, 그리고 국내를 벗어나 홍콩 등에서 한국 작가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가격이 1억원을 넘은 적이 있는 김동유·강형구·홍경택 등에 대한 체계적인 성장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전시해외 아트페어 소개경매로 이어지는 삼각형의 통합 프로그램, 정부·기업·개인의 작품 수요 확대, 그리고 아트페어와 주요 미술관의 동시적인 연계 전시 등이 입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너무나 적은 정부의 미술품 구입 예산 확대, 기업의 미술품 구매 장려 정책과 세금우대 등이 우선해야 한다. 공공수요의 대명사인 국내 미술관의 숫자가 10개로 미국 788개, 영국 194개, 프랑스 155개, 일본 88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생존 작가 중 40~50대 작가의 최고 가격이 일본 무라카미 다카시 150억원, 중국 정판즈 100억원, 홍경택 7억원이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술시장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 과세보다 지원정책이 확대돼야 하고,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통하는 작가군의 형성을 위해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협력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 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