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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계몽 군주 없었다면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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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클래식, 시대를 듣다
정윤수 지음, 너머북스
500쪽, 2만6000원

‘음악의 아버지’ 바흐, ‘신동’ 모차르트, ‘악성’ 베토벤. 언제부턴가 우리는 별칭으로 음악가를 이해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조잡한 수사’라며 낭만적 시선을 버렸다. 대신 당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음악가를 본다.

우선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를 통해 바흐를 설명했다. 루터의 개혁이 교회 음악의 혁신을 동반했고, 이 토대 위에서 바흐가 다양한 음악 실험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를 위해서는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을 먼저 만난다. 인문·예술 분야를 집중 육성했던 군주가 모차르트를 키워냈다. 놀라운 재능의 어린 아이를 ‘마귀 들린 아이’ 쯤으로 여겼다면 모차르트의 성공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또,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연말마다 울려퍼지는 것 또한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밀어닥친 낭만적 민족주의, 베토벤의 ‘독일 정신’에 대한 신성화의 결과로 우리가 송년 음악회에 ‘합창’을 단골로 듣게 됐다는 설명이다.

사실, 역사와 음악을 짝지어 설명하는 방식 자체는 새롭지 않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소식에 격분해 교향곡 ‘영웅’ 표지를 바꿨다는 에피소드와 같은, 음악의 상투적 역사화는 흔히 볼 수 있었다. 또 차이콥스키의 작품 세계를 평생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과 연계하는 것도 이젠 새롭지 않다.

저자는 이런 ‘에피소드식 역사화’를 최대한 비켜갔다. 대신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짝을 맺어준다. 차이콥스키에게는 도스토옙스키다. 『죄와 벌』등에 나타나는 슬라브주의를 먼저 설명하고 대척점인 서구주의에서 차이콥스키를 끌어냈다.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1번 선율이 당대의 문학 작품과 함께 읽힌다. 여기에서도 동성애로 인한 차이콥스키의 고뇌, 비극적 서정성 등 상투적 설명은 빠졌다.

이처럼 상투적 시선을 피하는 노력 덕에 수백년 된 클래식 음악이 풍요로워진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읽다 갑자기 거실로 나가 베토벤·슈베르트를 듣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면 저자로서 그만한 기쁨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 해석이 듣는 즐거움까지는 앗아가지 않도록 하는 균형잡기가 반갑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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