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조급증 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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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30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라크·이란 등과 함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국가"이며 "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비난했다. 부시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을 보여주며 특별한 전환점이 없는 한 북·미간 대화가 상당기간 냉각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는 2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미국의 이같은 대북 인식이 반(反)테러전의 확산기류와 맞물려 한반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 유지와 안정은 우리에게는 사활적 문제이며 동북아 및 세계의 안정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한국·미국·북한 간의 적극적인 대화며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의 봉합이다.
정부는 최근 개각을 통해 북한과 마찰을 빚은 통일부 장관을 교체했다. 혹시라도 장관 교체가 북한의 눈치를 살펴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는 명분용이라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식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을 떼쓰기와 자기도취에 빠지게 할 뿐이다.
임기 말의 정부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기보다 기존의 합의를 이행하도록 북한을 설득하고 강제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햇볕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지지가 더 넓어진다.
정부는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간 대북 인식차를 조율하고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한·미간 갈등과 불신의 시작이었다. 부시가 방한을 앞두고 밝힌 대북 강경인식에 대한 한·미간 갈등이 봉합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려면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의 조급증이 사라지고 대북 인식과 논리가 더 객관적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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