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아프간전' 일본의 외교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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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프가니스탄의 전후 복구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도쿄(東京) 국제회의가 22일 막을 내렸다.

이번 회의의 승자는 단연 예상보다 많은 45억달러의 지원금을 확보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수반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번 회의를 통해 외교력과 국가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

일본은 21세기의 첫 전쟁을 사실상 마무리짓는 이번 회의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형식상 미국.유럽연합(EU).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공동 주관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내용으로는 사실상 일본이 회의를 주도했다.

"일본이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이번 회의에 한국 대표료 참석한 한승수(韓昇洙)외교통상부 장관은 평가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1991년 걸프전 때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당시 일본은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외교적 대응이 미숙해 국제사회의 지진아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9.11 테러가 터지자마자 발빠르게 반(反)테러 진영의 선봉에 섰다. 게다가 이번 회의를 이끌어 일본도 국제문제를 주도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했다.

일본을 중시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지원도 큰 힘이 됐겠지만 일본 자신의 노력이 낳은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 정부는 9.11 테러 사건 이후 모리 요시로(森喜朗)전 총리 등 주요 정치인들을 인도 등 주변 국가에 보냈다.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일본 비정부기구(NGO)들이 쌓아온 민간외교의 성과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이번 회의에서 활약한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존재가 일본의 달라진 위상을 상징하고 있다.

일본은 '금전외교'로 막후역할은 해왔지만 국제무대의 주연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주연 역할에 성공함으로써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국제무대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력은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며 정부의 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케 된다.

오대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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